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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40분 아이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기저귀를 갈고 안아서 토닥여 주자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25분 칭얼되는 소리를 듣고 아이 침대를 들여다보았다.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주고 트림을 시킨 뒤 조금 안고 있다 눕혔다. 아침 8시 40분쯤 칭얼되는 소리를 듣고 아이를 확인했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안아주자 다시 잠이 들었다. 남편은 7시 30분에 출근을 했고 집에는 나와 아이 둘 뿐이다. 오전 10시 48분 이번에도 아이가 먼저 일어나 나를 깨웠다. 평소 오전 첫 수유 시 분유 160ml 이상을 먹는 아이가 오늘은 젖병을 갖다 댄 지 몇 분 만에 빨기를 거부하였다. 젖병을 식탁 위에 두고 눈금을 체크하니 고작 40ml가 줄어들었다. 너무 적은 양이라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젖꼭지를 입에 다시 넣어 보았다. 아이는 젖병 꼭지를 잇몸으로 씹으며 혀로 밀어냈다. 세 번을 넘게 시도하고 포기하였다. 몇 시간 뒤에 다시 먹여야겠다 싶어 남은 분유를 버렸다.
2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분유를 주기 위해 준비했다. 평소보다 먹은 양이 너무 적었기에 이번엔 많이 먹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아이를 안고 다시 수유자세를 잡았다. 호기롭게 165ml를 타서 아이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온도도 잘 맞췄고 무엇보다 먹어야 될 때가 분명했으니까 기대를 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까와 같이 젖병을 거부했다. 젖꼭지 문제일까 싶어 다른 브랜드의 젖병에 분유를 따라서 다시 줘보았다. 역시나 먹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고 강한 어조로 분유를 먹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몇 분 동안의 싸움에서 끝내 아이가 이겼다. 하나도 마시지 않은 분유가 아깝기도 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주려고 젖병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오후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까지 밥알 한 톨도 입에 넣지 못한 상태였다. 30분이 지나서 작은 냄비에 물을 끓이고 끓인 물 위에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젖병을 올려둔다. 젖병 안에 든 분유를 비접촉식 온도계로 온도를 체크하고 40℃ 정도가 되었을 때 꺼냈다. 여러 번 입을 대었다가 떼기도 하였고 중탕을 한번 하였으니 이번에도 먹지 않으면 이 분유는 버릴 수밖에 없다. 아이를 한쪽 팔로 안고 등을 다리로 받쳤다. 이번엔 제발 먹어줘라는 심정으로 젖병을 입으로 갖다 대었지만 아이는 매정하게도 입을 굳게 닫았다. 갑자기 아이가 너무 미워서 화가 났지만 먹어주기만 한다면 한 모금 들이키기만 한다면 쉬이 없어질 얕은 원망이었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바닥에 앉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사랑 고백을 했다 거절당한 마음 마냥 화가 나고 절망감 같은 게 느껴졌는데 그 와중에 배가 고파왔다.
삐삐삐 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오후 2시쯤 친정엄마가 집에 도착했다. 육아에 서툰 데다 체력도 달리는 딸을 위해 일주일에 몇 번씩 먼 거리를 오고 계셨다. 집안으로 들어온 엄마는 나를 보았을 것이다. 아기 엄마가 지어서는 안 될 우울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속으로 울고 있는 딸을 말이다. 내 표정에 대해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오늘 아이가 분유를 조금밖에 먹지 않아서 계속 더 주려고 하는데도 안 먹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고 덧붙여 나 역시 밥을 먹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고 내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텅 빈 위속에 따듯한 밥과 국물을 들이켰으나 기분은 여전히 우울했다. 더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도 젖병을 입에 넣어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이가 유난히 자주 깬 새벽부터 지금까지 받은 스트레스가 오늘 내 할당량을 넘은 상태였다. 밥을 먹고 소파에 조금 앉아있다가 씻으러 들어갔다.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머리를 감는데 눈물이 조금 났다. 사실 밥을 먹을 때도 뜨거운 게 자꾸 눈으로 차올라서 자꾸만 삼켜냈다. 엄마한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이었다. 머리를 말리고 청바지에 티셔츠로 갈아입고 천가방에 지갑과 핸드폰, 물병을 챙겨 넣었다. 전신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는데 붉은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이는 낮잠이 들었고 친정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젖병을 닦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붉은 눈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 집에 더 있다간, 한 번 더 아이에게 거부를 당했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가 오지 않았다면 혼자 집을 나선다는 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6월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고 바람도 적당히 불었다. 무작정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좋아서 마음속은 더 미칠 듯이 쿵쾅되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걸었다. 사람이 드문 길로 빠져서야 비로소 조금 소리를 내서 울었다. 나는 하느냐고 했는데 아이가 받아주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내 모든 일상적인 것들이 아이의 뒷전으로 물러나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조금 더 일찍 와서 나를 구원해주기를 바랐던 걸까.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었다. 오늘의 나는 엄마 될 자격이 없어라는 생각. 이런 게 무슨 엄마라고 라는 생각. 그렇다고 집을 나오다니 진짜 무책임하다는 생각.
도망치듯 집을 나왔지만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머리에 번뜩 든 생각은 쇼핑센터에 있는 대형서점이었다. 지하철이 사람들을 싣고 플랫폼으로 들어왔고 나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몸도 마음도 덜컹거린 채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게 하던 생각이 조금은 흐릿해짐을 느끼며 다음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