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비가 왔어
똑바로 누웠다가 다시 옆으로 누웠다가 계속 사부작거렸다.
병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핸드폰으로 태교음악을 듣고 있다. 이번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듣고 있는 중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창가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고 빗길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들린다.
옆방 티브이 소리도 제법 들리고 신생아실의 아기 우는 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시간도 들리는 것만 같다.
오늘 아침부터 병원에 와서 수술 준비를 하고 남편에게 "다녀올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내 발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서늘했고 들어가자마자 간호사들과 마취과 의사가 무릎을 가슴으로 가져가서 새우등 자세를 취하게 한 후 척수마취를 시도했다. 따끔하면서 바늘 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마취기운이 서서히 올라왔다. 여러 번 척수마취를 시도했다는 출산 후기를 많이 읽어본지라 한 번에 성공해 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마취가 끝나고 팔을 움직일 수 없게 손목에 억제대가 감겼다. 나는 손가락을 몇 번 움직여 보았지만 그뿐, 제 발로 들어온 지 불과 몇 분만에 무력한 인간이 되어 누워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타일 벽에 수술포 아래의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배를 절개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려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큰 수술포를 한 겹 더 씌워서 더 이상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제왕절개 수술을 결심하고 소변줄을 꽂는 게 제일 께름칙하고 수치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각이 없자 모든 게 수월했다. 수술 준비가 끝나자 주치의가 들어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수술을 잘해주겠다고 했고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고통은 없었다.
아이를 꺼내는 순간이었는지 태반이 나오는 순간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상반신까지 덩달아 움직였기에 하체가 들썩거리는 것을 느꼈다. 드라마에서는 출산의 과정을 매우 간략하게 다룬다. 보통 임산부가 힘을 주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오고 의료진이 힘을 내라고 말하면 바로 뒤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식의 전개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시간 동안은 나도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뚝딱,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랬다.
정오 열두 시 팔 분, 드디어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아가가 세상으로 나왔다.
갓 태어난 아이를 내 오른쪽 머리맡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쳐다보았다. 어서 내게 데려와 보여주길 바랬지만 아기 상태를 확인할 때까지 기다렸다. 확인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고 온 의료진은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내게 확인시켜줬고 나는 한 귀로 들으며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양수에 불어 초음파 속 사진과 달랐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길 기다려본 사람은 없었는데 진짜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신기했다.
나는 속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너였구나."
나는 오늘 임산부에서 엄마가 되었다.
잠은오지 않는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를 생각했다가 뱃속을 주먹으로 얻어맞는 거 같은 통증에 힘겨워했다. 그래도 똑바로 누울 수 있었다. 임신 말기부터 숨이 차서 왼쪽으로 밖에 눕지 못했었는데 그때 가장 해보고 싶은 자세가 지금처럼 천장을 보고 눕는 것이었다. 어둠속에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