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너에게 화를 낼까 봐

어린이집을 보내고

by 한 작자

대기를 걸어놓은 어린이집에서 이틀 만에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을까 하다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어린이집 원장이었다. 만 0세 반을 다음 달에 재개할 예정이라고 아이 세명 당 한 명의 선생님이 배치될 거라면서 우리 아이가 입소하면 그 세 번째 아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아파트 1층에 위치한 가정어린이집으로 모레 방문해서 상담을 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틀 전 저녁, 아이사랑 포털 애플리케이션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에 가장 빠른 달로 입소 대기 신청을 하였다. 맘 카페와 주변 지인들을 통해 아이의 주민번호가 나오면 바로 입소대기를 해야 할 만큼 대기자가 많다고 들었다. 내년 초 회사로 복귀하기 두 달 전에는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그보다 5개월이나 빠르게 신청을 해버린 것이다. 어느 블로그에서 어린이집을 보내는 가장 적절한 시기는 엄마가 미치기 직전이란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남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지금 내가 그 직전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한 달 전부터 친정엄마도 육아를 도와주러 오지 못하면서 막 다른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린이집뿐이었다.

남편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지 내게 불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일단 신청을 해놓겠다고, 연락이 언제 올진 모르니 빠른 날짜로 선택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일주일 전 지인의 결혼식장을 갔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그중 우리 아이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난 아이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어린이집 얘기가 나왔다. 그녀는 독박 육아 중으로 다음 달 회사로 복귀하게 되어 미리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다면서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보내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며 어린이집을 보낸 비슷한 개월 수(7개월)의 엄마들이 쓴 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하루에 몇 시간 보내면 밥도 좀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고 마음 편하게 씻을 수도 있고 혹시 아프면 병원도 갈 수 있잖아. 멀리 사는 엄마에게 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도 집보다 훨씬 많은 놀잇감에 아이를 많이 상대해 본 전담 선생님이 놀아주면 지쳐있는 나보다 낫지 않을까."


이틀 뒤 약속된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우선 걸어서 2분 거리로 가까운 편이었고 원장 선생님은 매우 친절하게 약간은 장황하게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처음 만난 하이톤의 마스크를 쓴 원장 선생님에게 놀랐는지 짧게 울었다. 별도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을 예정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전까지는 남편과 상의해서 등록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하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아이는 힙시트 위에 폭 안겨서 아파트 주변을 구경했다. 뜨거운 여름 햇볕이 가시고 있는 오후였다.


나의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러웠고 더없이 이뻤다. 그런 아이를 보다가도 감정이 조절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다. 특히 생리 전이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잠이 부족할 때 그랬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분유나 이유식을 잘 먹지 않을 때나 유난히도 낮잠을 자지 않을 때, 옆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져도 울기 시작하는 날은 힘이 들었다.

아이에게 일관성 있게 재빨리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항상 다정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는 힘들다. 어떤 날은 좋은 엄마였다가 어떤 날은 무기력한 엄마였다가 어떤 날은 의욕이 넘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변덕이 심한 다른 말로는 기분 변화가 큰 그런 사람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점철되기도 했다.


평일은 남편이 출근하고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약 12시간을 혼자서 아이와 지냈다. 그렇게 매일이 지났다. 웃는 아이를 볼 때는 마냥 좋아서 같이 웃었다. 아이의 필요에 맞춰주려고 노력해도 이유없이 울 때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 지겨움을 달래려 새 장난감을 사들였고 육아에 도움이 되는 책과 유튜브를 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언젠가처럼 우는 너를 달래주지 않을까 봐, 너에게 짜증을 낼까 봐, 너에게 화를 낼까 봐.

오십여 일 무렵 안은 상태에서는 잘 자다가도 눕히기만 하면 울어서 나도 모르게 안고 있던 아이의 몸을 세게 움켜쥔 적이 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너에게 화를 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잠든 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런 날이 다시 찾아올까 봐 하루 중 몇 시간만 아이와 떨어져 있기로 마음을 굳혔다.


시댁과 친정 그리고 남편까지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소리를 듣기는 힘들거라는 것을 알고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혹자는 아이 하나 보기를 엄살이 심하다고 할지도 모르고 몇 시간 편하자고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다니 이기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서 조금 행복해지고자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책 구절을 변명으로 삼아본다.



이전 15화엄마가 필요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