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감상
호기롭게 점식 식후에 콜드브루를 먹은 날은 새벽에 잠이 깰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한 번에 벌떡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얕은 잠에서 깨어 눈을 감은 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한잔 마신다.
카페인에 취약한 주제에 역시 오버했다는 자책을 뒤로한 채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일어날 정신이 든다. 그리고 오늘처럼 사람들을 마주한 날은 바둑기사라도 되는 냥 낮 동안의 내가 둔 막수에 복기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보통은 재택근무와 외근(병원으로 당일 또는 연속 출장)으로 스케줄러를 채우지만 오래간만에 "사회생활"을 위해 회사를 나갔다. 풀재택 근무자가 회사에 나가는 것은 정말 모처럼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일단 언제 나갈지 정했다면 회사에서 운영하는 자리예약 홈페이지를 켠 다음, 그나마 구석진 자리, 조용할 것 같은 자리를 예약한다. 그것도 대부분 좋은 자리는 예약되어 있어서 남은 자리 중에 골라야 한다. 그렇게 예약을 하고 나갔다면 회사에 도착해서 Check in을 한다. 그러고 나서 모니터만 있는 빈 책상을 가져온 물건들로 채우고 자리에 익숙해지면 퇴근을 한다. 회사 근처에서 같은 업종에 있는 지인 둘을 만나게 되어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진행여 회사에 출근했다.
편안함에 적응하는 것은 원래 이렇게 빠른 것인가 할 정도로 나는 입사 5개월 만에 풀재택근무에 완전히 적응했다. 오늘처럼 회사를 갔다 오는 날은 강남에 기가 빨린 탓인지 지하철에서 무거운 백팩을 메고 왔다갔다한 탓인지 집에 오자마자 출근은 힘들다고 남편에게 투덜거린다.
왕복 7 천보를 찍고 일찍 일어난 탓에 잠은 쉬이 들었으나 오전 2시 56분, 나는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오늘 내가 했던 말들이 자꾸 떠올라서 결국은 '아 그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뻔했는데'의 자아 반성의 시간을 침대에서 갖다가 이렇게 된 이상 글이라도 주절거리면 잠이 다시 올까 싶어 뚝딱거리며 쓰고 있는 새벽이다.
오늘의 복기 중 가장 후회되는 수는 지인 중 한 명에게 "데이트할 때 뭐해요?"라는 질문을 한 것이다. 진짜 그런 건 왜 물어봤는지 올해 연애를 시작했다고 들은 후 처음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거기까지 가버렸다. 이런 생각은 보통 과한 몰입으로 그 질문 들었을 때 속으로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라는 생각을 했겠지에서부터 친절히 대답을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다가 다음엔 진짜 그러지 말아야지요 돌아가서 이불을 박차게 만든다.
오늘도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만들어내는 자신에게 진짜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 너 진짜 I(NFP)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