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극 보수 교사일지도?
유아대상 현행 교육과정인 '유아놀이중심 교육과정'
유아 교사들은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놀이 중심'이라는 교육과정을
교육과정 내에 명시된 교육목표, 내용, 세부내용들을 기반으로 하여 놀이를 통한 배움을 실천한다
그 과정에 자율성이 부여되고
'유아' 놀이 중심이다보니
유아들이 좋아하는 것! 을 적극 교육에 활용하는 놀이 및 활동 사례들도 많이 보여진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내가 많이 접해본 사례는 포켓몬과 관련된 놀이들이었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유아들이 많은 반에서 '포켓몬'들을 소재로 놀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학원 현장 사례 발표에서 본 한 가지 사례는,
언어영역 발달을 위한 언어놀이로 포켓몬 카드, 포켓몬 책 만들기를 활용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포켓몬의 이름을 쓰고 그 특징을 적는 과정을 통해 책 만들기를 하고
포켓몬 카드를 사고 파는 시장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 포켓몬을 활용한 언어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누리과정 의사소통 영역의 많은 발달 내용,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누리과정 고시문에 나온
말과 글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 주변의 상징 글자 등의 읽기에 관심을 가진다. 하는 내용들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주제이다 보니, 놀이에 대한 주도성과 적극성은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과 오랜 기간 놀이를 운영하기가 쉽지가 않다
놀이가 확장되고 깊이있는 사고와 문제해결력 등을 경험하게 하려면 교사는 끊임없이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내고 아이들의 흥미요소는 무엇인지 관찰하고 놀이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포켓몬을 놀이의 매개로 활용한다고 해서 유아들의 지속적인 흥미유발이나 놀이 확장이 (거저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조금 수월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뭐 그렇다
TV와 유튜브에 나오는 캐릭터들. 만화. 아 그리고 가요들마저 나는 교실에서 허용하고 싶지 않다 (아파트 아파트 이런 중독성 강한 모든 가요들도 마찬가지)
우리 반 아이들도 만나면 서로 포켓몬 이야기를 한다.
가끔은 내게 색칠공부 도안을 뽑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재밌는 게 있다며 태블릿으로 영상을 검색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기초에 강력한 거절의사를 밝힌다.
'유튜브, TV에 나오는 것들로 너희가 노는 걸 선생님은 원하지 않아. 미안하지만 안돼'
단호하고 완강하게 선생님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이유에 대해 다같이 모아놓은 이후 설명한다.
그리고 나면 우리반에서는 영상매체에서 보여지는 것들로 놀이하는 모습들은 거의 보여지지 않는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 아이들도 어느정도 납득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너희들이 집이나 영화관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약속을 지키며, 너희 연령대에 맞는 재미있는 만화나 영화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야.
하지만 선생님은 너희가 교실에서 포켓몬이나 티니핑을 가지고 놀이하기 보다 다른 놀이를 하면 좋겠어.
유치원에서는 유치원에서의 놀이가 있어. 피카츄가 없어도 우리 반에는 이름이 다양한 공룡과 멸종위기 동물들이 있고 종이와 색종이, 너희가 좋아하는 모래놀이가 있잖아.
포켓몬 놀이를 하다보면 포켓몬을 보지 않았던 친구들도 그걸 찾아보게 될테고, 이미 보고있는 친구들은 더 집중해서 많이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일단 선생님은 우리가 포켓몬 놀이를 하기 때문에 TV랑 핸드폰 앞에 앉아 집중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많은 관심을 갖게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그대로.
첫째, 유치원에는 유치원의 놀이가 있다
공룡을 주제로 놀이한다면 아이들은 공룡 안에는 초식/육식공룡으로 분류가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며 각기 다른 공룡들은 어떤 특징을 갖는지를 놀이를 통해 알게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금은 볼 수 없는 '공룡'이라는 동물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 나가고 몰랐던 미지의 영역을 상상력을 통해 확장해갈 수 있다
내가 운영했던 놀이 주제들을 나열해보자면 공룡, 꼬마 예술가들, 역사, 멸종위기 동물, 곤충, 워터슬라이드, 짝꿍편지놀이, 물놀이, 모래 길, 구슬길, 감정, 하늘의 색, 빛 등등..
아이들이 놀이할 수 있는 주제 매개체는 너무나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꽤나 상업적이고 자극적인 영상매체 '보기만 하는 놀이'의 주인공들을 교실에까지 데려와야할까?
그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놀이 아닐까?.. 물론 교사가 교실에서 함께하는 놀이는 집에서의 놀이와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교육 전문가인 교사가 많고 많은 아이들의 흥미들 중에 굳이 만화 캐릭터를 택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둘째, 만화에 집중하게 되는 모습들을 보는 것이 영 불편하다. 싫다.
이게 가장 큰 이유다
교실에 16명이 있으면 모든 아이들이 포켓몬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정해진 영상매체만 보는 친구들도 분명히 있고, 어지간하면 영상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 교사인 내가 '자 이번 놀이는 너희가 좋아하는 포켓몬! 신나게 놀아보자구??' 하고 못박아버리면,
그 친구는 "포켓몬? 엄마아빠 그게 뭐야? 나도 놀이 할래! 보여줘!" 하게 되지 않을까??
나만 해도 지금 4살먹은 나의 아들에게 영상매체를 굉장히 한정적으로 제한하고 선택해서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도 쭉 그럴 계획인데
교실에서 뜬금없이 포켓몬 놀이를 한다면?
아..........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이렇게 관심없고, 굳이 안봐도 되는 만화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교사가 만들어주는 게 맞나,, 하는 생각
뿐만 아니라 포켓몬을 원래 좋아하던 아이들도 문제다
나는 피카츄만 알았고 내가 보던 건 예를 들어 시즌1인데
놀이를 진행하다 보니 같이 놀던 애가 야마겟돈 이야기를 하며 시즌3을 놀이한다
그럼?
그럼 또 포켓몬스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놀이하기 위해 야마겟돈을 찾아 보겠지
이렇게 놀이 때문에 '만화'라는 것 자체가 강화되는 것이 싫고 부담스럽고 교사로서 좀 꺼림직하다
아무리 교육적으로 만들어진 영상이라고 해도 장시간 노출되면 좋지 않은 것이 미디어인데
그걸 교실로 데리고와 함께 놀아보자는 게, 영- 맘에 안든다
평소에 놀이에 관심없던 유아들까지 싸그리 모아서 흥미유발이 되었다던가
관심있는 주제를 가지고 놀다보니 교육적 효과가 더 뛰어났다던가,
뭐 결과적으로 교육의 효과성은 좋았을지 몰라도
놀이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라는 이유 외에
다른 부분들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는지가 조금 우려되기는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안하지만 나의 반이 될 모든 친구들은 지금껏 그랬왔듯
앞으로도 교실에서 자기가 봤던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놀이로 매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교실에서 말도 못하게 하는 건 아니니까.. 이해해주길 바란다 ㅎㅎ
어쩌면 나는 교사들 중 극 보수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은 교사의 철학 안에서 꽤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교육적 자료를 제공하고 유해한 모든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야 하며,
올바른 기본생활습관과 정서를 만들도록 하는 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라고 뭐 모든 놀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파워 선샘미는 아니지만,
[그냥] 선생님으로 남고싶지는 않으니 이렇게 저렇게 계속 생각하고 남기고 실천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