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th 로맨틱 파티(로맨틱펀치 10주년 기념공연): 19.6.15
길을 걷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오르막을 오르며 숨이 끊어질 것처럼 힘들 때는 이 힘든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드디어 오르막을 넘고 내리막길을 수월하게 걸을 때면 그제야 비로소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힐 여유를 찾게 된다. 하지만 쉼 없이 걷는 동안 앞으로만 내딛던 걸음을 멈춰 뒤를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삶의 여정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남은 거리를 계산하기에 바빠서 내가 걸어온 시간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경우가 참으로 드물다.
지난 6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신한 FAN스퀘어에서 로맨틱펀치의 10주년 기념공연인 86TH로맨틱 파티가 열렸다. 내가 입덕을 해서 삼 년 여의 시간 동안 교통사고로 한 번 그리고 독감으로 빠졌던 85TH로파를 제외하고는 로맨틱 파티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가고야 말았는데 10주년 기념공연에 나는 사정상 15일 하루밖에 갈 수 없었다. 실은 양 이틀 공연인지라 하루는 일층에서 또 하루는 이층에서 찍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로펀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어서인지 공연을 보는 나도 참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공연이었고 공연을 준비하고 또 공연을 하는 로펀 식구들과 멤버들의 마음도 남달라 보였다.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로펀의 신곡 <그걸 좋아해> 뮤직비디오 배경화면 대형 사진 출력물이 준비되어 있었고 로펀이 <불후의 명곡> 출연 때 입었던 의상과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오는 관객들마다 소중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찍었다. 그런데 올릴 수가 없다. 난 사진만 찍었다 하면 오징어가 되니까.....
공연에 임하는 멤버들의 마음도 감회가 남달라서인지 왠지 이날의 분위기대로라면 남북통일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동안의 로파와 비교해봤을 때 내가 경험한 단독 공연 중 가장 많은 관객이 모였고 나는 10주년 기념공연에 빛나는 스탠딩 10번을 무려 내손으로 티켓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10번이라고 해서 좋은 자리를 잡는 건 아니어서 나의 결정력 장애로 인해 나는 오른쪽 시야를 전부 잃어야 했다. 또한 배인혁 님이
계속 A열 쪽으로 몸을 향하는 바람에 난 뒷모습만 500장 찍었나 보다.
가장 심각했던 건 내가 차지한 자리의 바닥이 단차가 있어서 왼발은 바닥에서 5CM 올라간 반면 오른발은 바닥이어서 점프를 할 때마다 왼발은 덜 뛰고 오른발은 더 뛰어야 균형이 맞는 참으로 애꿎은 상황이 되었다. 하긴 로펀을 보는데 짝발로 뛴다고 한들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다만 공연을 다녀와서 몰려오는 근육통이 문제일 뿐....... 공연을 다녀와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다리가 아플 때마다 로파가 떠올라서 혼자 씩 웃고는 또 다리 아파서 두들기고.......... 참으로 로펀 앓이는 삼 년째 중병이다.
다음 블로그 업로드에 문제가 있어서 브런치로 갈아탔는데 브런치는 업로드한 사진 위치 변동이 안된다. 그래서 글과 사진이 매치가 되질 않는다. 쩝! 인생~참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그래도 꿋꿋하게 쓴다. 왜냐면 이걸 정리를 해야 내일 또 부산 공연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의 셋 리는
1. 화성에서 만나요
2. 글램 슬램
3. 몽유병
4. 파이트 클럽
5. 치명적 치료
6. 이 밤이 지나면
7. 레디 메리 GO
8. 그걸 좋아해
9. Don't stop me now(guest 김태현 콜라보 무대)
10. Viva 청춘(guest 김태현)
11. Silent Night
12.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13. 너의 밤
14. 메이데이 메이데이
15. 굿모닝 블루
16. 사랑에 빠진 날
17. We are the champions
18. Still Alive
19. 안녕 잘 가
20. 야미 볼
21. 토요일 밤이 좋아
22. Amazing
내가 로맨틱펀치 단독 공연을 처음 갔던 건 2016년 10월 30일에 있었던 72th 로맨틱 파티가 처음이었다. 이날 로펀은 17곡을 불렀다. 그날 나는 쉼 없이 뛰면서 17곡을 소화해내는 로펀을 보며 진정 깜짝 놀랐다. 보컬이 축구선수도 아닌데 전반, 후반 휴식 시간도 없이 풀타임을 뛰는 걸 내 눈으로 보면서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닐까? 저러다 피 토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걱정 반 호기심 반이었지만 공연이 끝날 때쯤엔 그 모든 감정들이 놀라움으로 압축되었다. 내가 아무리 음악에 문외한이기로 이렇게 대단한 밴드를 몰랐다는 사실에
나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었고 내가 정말 대단한 밴드에 입덕 했다는 자부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로맨틱펀치는 지독한 감기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2016년 12월 31일 74th로맨틱 파티에서 무려 25곡을 소화해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 컨디션으로 두 시간 반 넘게 공연을 소화해내는 로맨틱펀치 보컬 배인혁 님을 지켜보며 나는 '투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관객을 위해서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일어설 수 없어도 소리 지르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로펀 멤버들을 보면서
그들이 밴드 활동을 하며 보내온 10년의 시간의 무게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10년 동안의 공연을 매번 새롭게 시작하고 준비하는 로맨틱펀치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성실한 발걸음을 내딛을 때 나는 그들의 지나온 10년을 돌이켜보았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중간중간 많이 울컥했다. 로맨틱펀치가 걸어온 십 년의 시간이 마치 고무장화를 신은 채 뻘밭에 빠져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모습만 같아서 그들의 안간힘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들을 락밴드가 더 이상 자립하기 힘든 대한민국의 척박한 음악계에서 끌어내 그들이 바닥을 딛지 않고 창공을 날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공중파 경연 프로그램에서 실력에도 불구하고 2위에 머물렀던 안타까운 기록과 제발 공중파라도 타면 로맨틱펀치가 드디어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입덕 초반기에 나를 사로잡았다. 이후 보컬 배인혁 님은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보컬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소향'에게 안타깝게 석패를 했고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제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로펀 멤버들과 로펀 팬들의 간절한 바람이 드디어 응답을 받았는지 로펀은 <불후의 명곡> '김상희'님 편에서
'경상도 총각'으로 첫 우승을 했고 뒤이어 연말 왕중왕전에서는 퀸의 'We are the champions'로 영광스러운
왕중왕전 트로피를 얻었다. 또 지난 '엘튼 존' 특집 <불후의 명곡>에서는 'Crocodile Rock'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 엄마는 광주방송에서 <난장>을 통해 로펀을 보실 때면 어쩜 저렇게 쉬지도 않고 뛰어다닐 수 있는지 신기하다며 하루에 밥을 다섯 끼는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게 물으셨다. 우리 시어머님은 <불후의 명곡> 방송을 보실 때마다 어쩜 저렇게 잘하는데 방송에 자주 안 나오는 게 신기하다고 내게 물으셨다. 도움닫기 십 년이면 이제 공중으로 도약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순간에 인기몰이를 했다가 사건사고로 활동을 접는 가수들이 부지기수인 요즘 십 년을 꾸준하게 음악활동을 해온 로맨틱펀치의 성실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날 공연을 보는 내내 오랜만에 로파라 너무 즐겁고 신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시간들과 내가 느꼈던 그동안의 감정들이 함께 느껴졌다.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시간을 몸소 체험하는 동안 로펀은 그 어느 때보다 멋진 모습으로 더 많이 뛰고 더 높이 소리 지르고 더 화려한 연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보컬 배인혁 님은 공연 중 자신들이 공중파를 출연하게 해 준 곡이라며 로펀에 입덕 한 삼 년 동안 이번 포함 딱 두 번째 듣는 '레디 메리 GO'를 들려줬다. 노래 가사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처럼 신이 나서 심장이 몸 밖으로 탈출하는 줄 알았다. 오랜만에 듣는 'Silent Night'를 부를 때는 관객들 떼창에 보컬님이 감동을 받기도 했다. 로맨틱 파티는 로맨틱펀치의 단독 공연인 만큼 공연을 통해 얻게 되는 감동이 평소 공연의 수십 배는 되 것 같다.
사실 로맨틱 파티 때의 떼창과 신나게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도 일 년간 캠코더 풀영상을 찍었을 정도로 로파는 언제나 감동이다.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도 공연을 즐기는 관객도 모두가 뭔가를 해내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만드는 공연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공연이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에 의해 기획자가 의도하는 무언가대로 관객을 이끄는 반면 로맨틱 파티의 주인공은 공연의 주체인 아티스트뿐만이 아니라 바로 관객이 공연의 주체가 된다.
관객과 호흡을 한다는 말을 실례로 든다면 바로 '로맨틱펀치'의 공연이 그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조명 구조물에 매달리고 무대 바닥에 온몸을 부대끼고 사방팔방으로 붕붕 날아 점프를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로맨틱펀치를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사실 이날도 보컬님은 관객의 손을 잡고 펜스 위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혹시나 떨어질까 봐 난 보컬님의 발목을 엉겁결에 붙잡게 되었다. 평소에는 눈만 마주쳐도 불에 꾼 오징어처럼 오그라 붙는 나인데 눈을 안 마주치니 용기를 내서 워커를 부여잡고 있었다. 항상 공기저항 일도 없이 언제든 공중으로 솓아오르는 보컬님이라 혹시나 신발에 무슨 특수기능이 있는 건 아닐까 궁금했는데 잡아보니 그런 기능은 없고 가죽이 참 보드랍다는 느낌만 들었다.
신곡 <그걸 좋아해>를 부를 때는 보컬님이 장미꽃과 와인잔을 손에 들고 RP단상에 기대어서 노래를 부르다 관객 중 한 명에게 장미꽃과 와인잔을 건넸다. 진심 부러워서 쓰러질 뻔했다. 보컬님은 티켓 값이 비싸지만 내일 공연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준다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거라며 락밴드의 불모지와 같은 대한민국에서 관객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될 거라고 말했다.
10주년 기념공연이라서 경품 추첨도 했는데 경품은 로펀 멤버들의 사인이 된 기타였다. 물론 될 리가 없지만 정말 갖고 싶었던 그 기타는 A구역 63번 남자분이 득하셨다. 기타 콘치 님은 혹시 기타를 칠 줄 모르신다면 기타리스트 레이지한테 강습을 받으면 된다며 친철한 안내도 덧붙였다.
'굿모닝 블루'를 부를 땐 '오 나의 슬픔이여 안녕'을 하기 전에 관객들이 앉았다가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올라 '안녕'을 외치는 장관이 펼쳐졌다. 예전에 캠코더 풀 영상을 찍을 때 항상 풀샷으로 관객들과 무대를 함께 잡았던 포인트가 바로 '굿모닝 블루'와 '사랑에 빠진 날'이었는데 이제 카메라를 잡은 나는 관객석을 잡을 수가 없다. 다만 무대 위의 아티스트에게 더 집중해보려 한다.
공연 중 사진을 찍을 포인트가 많았음에도 조명이 어둡고 너무 빨갛고 파래서 찍었지만 사진을 건질 수가 없었다. 본인의 브랜드 공연인 <사적인 세계> 때도 공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조명을 어둡게 했던 보컬님인지라 이날도 영상을 자제하기 위해서 조명을 어둡게 했다는 보컬님의 말처럼 찍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보정 실력이 없는 나로서는 살릴 수 없는 사진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진을 가지고 나는 오늘도 후기를 쓴다. 정말 핸드폰 셀카 한 장도 못 찍는 내가 2016년에 로펀에 입덕을 해서 로펀을 찍고 싶은 맘에 최신폰으로 바꾸고 풀영상 찍고 싶은 욕심에 영상 일자무식이 캠코더를 구입하고 하이엔드 카메라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로 바꾸는 동안 삼 년의 시간이 지났다. 로맨틱펀치의 활동 십 년 동안 내가 함께 한 시간은 절반도 되지 않지만 앞으로의 십 년은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이날 '락페가 장난이냐'라는 글귀가 써진 검은 반팔 티를 입은 슬램 팀이 로펀의 단독 공연에 왔다. 보컬 배인혁 님은 슬램팀이 찾는 공연이니 로펀이 그래도 록 음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냐며 굉장히 기뻐했다. 하지만 잔잔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슬램팀을 의식하며 로펀이 '락'한 음악도 있지만 중간중간 감성의 포인트도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맨 앞자리에서 단차 있는 자리를 지키고 있느라 뒤에서 슬램이 펼쳐지는 장관은 보지 못했지만 메가폰을 잡고 시작하는 <글램 슬램>부터 1.5kg이 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도 자동으로 뛰게 되는 신나는 곡들을 연달아 달리면서 오랜만의 로파를 만끽했다. 물론 <Still Alive>를 부를 때는 지난 10년 동안의 시간이 갑자기 가슴에서 훅 치고 위로 올라왔는지 보컬님이 울 뻔했지만 잘 참았다.
<Amazing>을 끝으로 어마어마했던 10주년 기념공연이 끝이 났다. 몰랐는데 이날 텐션이 업됐던 보컬님이 기타 콘치 존에서 단상까지 점프를 하다가 넘어져서 바닥에 크게 부딪히는 바람에 삼초 간 일어나질 못했다고 한다. 이날 초속 0.3인 렌즈 AF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0.1초 단위로 움직이고 계속 점프를 했던 보컬님인지라 다쳤단 사실이 더 속상했다. 매번 공연이 마지막 공연인 것처럼 온몸을 던져서 불태워버리니 공연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그 화려한 퍼포먼스가 즐겁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제 앞으로의 십 년을 향해 다시 출발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말할 내용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로펀이 더 높고 더 멀리 날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PS: 내가 못 간 둘째 날 '일탈'과 '미드나잇 신데렐라', '리틀 레이디', '쌩'을 불러줬다고 해서 나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의 집안일이라고 들어보셨는지............ 아~~ 그래도 현생을 챙겨야 나도 앞으로 10년의 덕질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