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아이고 복순언니 이것 좀 놓고... "
양 손가락으로 미호의 머리카락을 야무지게 움켜쥔 복순할머니는 미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잉.. 내가 모를 줄 알고, 니년이 내 밥 훔쳐먹었지? 얼른 내놔 이년아."
진정제 주사를 놓을 준비를 하고 수간호사가 남자간호사 두 명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섰다. 그들을 보고 다급하게 미호가 손으로 그들을 만류했다.
"한쌤.. 제가 잘 달래 볼게요.. 잠깐만요."
"이거원, 한두 번도 아니고 보호자 불러 퇴원조치를 해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수간호사 한 선생님이 병실을 나간 후 미호는 손으로 복순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놔주면 언니 먹고 싶은 거 내가 줄 건데."
미호의 말에 복순할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 언니... 나 고구마 먹고 싶어."
"고구마? 내가 달고 뜨신 걸로 사다주지.. 언니.. 그러니까.."
그제야 미호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 감긴 손가락을 푼 복순 할머니는 배시시 웃었다.
머리카락이 산발이 돼서 욱신거리는 머리를 움켜쥐고 병실을 나온 미호를 본 수간호사가 혀를 찼다.
"미호쌤, 매사 환자한테 밑 보이니까 이런 일 당하는 거 아냐."
"참을 만큼 참았어, 당장 보호자 전화해야지. 한두 번도 아니고, 저 식탐을 어쩌냐고."
"굶어 죽은 귀신이 붙은 건지... 원."
"복순환자 여기서 나가면 받아줄 데도 없어요. 한쌤, 제가 더 잘 볼게요. 제발요."
"미호쌤이 보호자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런 건데 나만 나쁜 사람 같잖아."
"죄송해요."
고개를 숙이는 미호를 보며 수간호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환자 차트를 들고 다른 병실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미호는 점심시간 때 병원 앞 카페에서 파는 군 고구마를 사 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니.. 맛있지."
대답도 안 하고 미호가 껍질을 벗겨준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고구마를 한 입 가득 욱여넣은 복순 할머니는 해맑기만 하다. 이내 목이 메는 그녀에게 미호는 빨대를 꽂은 바나나우유를 건넸다. 우유를 한 모금 들이키고 그제야 살겠다는 듯 웃는 할머니를 보며 미호는 따라 웃었다.
본인의 점심시간을 덜어 할머니의 고구마가 진득하게 묻은 손가락과 입가를 정리해 주고 싫어하는 양치까지 달래서 시킨 미호는 병실 침상에 앉은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을 잡았다.
병실 창살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이 노곤하게 졸음을 몰고 오는지 복순할머니는 졸린 눈치였다.
침상에 누운 할머니가 잠들자 미호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톱깎이를 꺼내서 고구마가 잔뜩 낀 할머니의 손톱을 깎아 자른 손톱을 모두 모아서 복주머니에 담았다. 이어 침구를 잘 덮어준 다음 미호는 오후 바이탈 체크를 위해 병실을 나섰다.
시내에서 사십 분은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세향리에는 수령 천 년 이상인 보호수가 있다. 보호수는 이미 오백 년 전 조선왕조 때 백송령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선조 때 정자와 비석을 하사 받았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하달받은 와쓰지카 경감이 수하들을 이끌고 보호수를 베어버리려 했으나 돌연 돌풍이 불고 먹구름이 일더니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변괴가 생겨 겁을 먹은 일당들이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세향리 아이들은 잠들 때면 할머니가 들려주는 백송령이 일본 순사를 혼구녕 내준 이야기를 너무도 좋아했다.
버스 안에서 널브러져 잠이 든 미호를 버스기사가 깨웠다.
"종점이여. 종점... 잠은 집에 가서 자."
그제야 실신에 가깝게 잠들었던 미호는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간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어보았다.
창밖으로 익숙한 보호수의 모습이 보이는 걸 본 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아야.. 하고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복순할머니에게 쥐어뜯긴 머리가 아직도 욱신거렸다. 머리를 대충 손으로 문지르며 미호는 버스 기사와 함께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보호수에서 대나무숲 쪽으로 오분 정도를 오르막길로 올라간 막다른 길에 미호의 집이 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잉... 그랴...어여와."
머리가 백발인 왜소한 할머니가 방문을 열어 미호를 반겼다. 열린 방문으로 찬바람이 들어갈까 미호는 서둘러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 방문부터 닫았다.
그윽한 달빛으로 가득 한 밤, 할머니와 마주 앉은 미호는 할머니의 손에 복순할머니의 손톱이 담긴 복주머니를 건넸다.
"니가 고생이 많다."
한 손에는 복주머니를 들고 할머니는 말없이 미호의 손을 잡았다.
미호에게 미처 하지 못하고 할 수 없었던 말은 마음속으로만 안타깝게 되뇔 뿐이었다.
'미호야. 미안하구나. 내가 어서 죽어야 하는데 네가 서른세 살이 되는 3월 3일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
"괜찮아.. 할머니.. 어서 주무셔. 난 건너갈게."
"그랴그랴..."
불이 꺼진 방안 창문으로 달빛이 고요하게 스며드는 가운데 할머니는 미호가 준 복주머니를 열어 복순할머니의 손톱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읭? 이건 고구마맛 손톱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