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시즌 3>에서 회상 장면으로 뒤집힌 세계를 가공할 초능력(염력)의 힘으로 닫아버리는 엘의 모습(시즌 2)을 보면서 나는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어벤저스 엔드 게임>을 떠올렸다.
<어벤저스> 시리즈는 지구를 외계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 영웅들을 다룬 영화이다. 타노스의 공격을 받고 인류의 십 분의 일이 사라지는 상황에서도 일반인들은 그저 메모리얼 파크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떠올리며 망연자실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히어로물들의 대부분이 이처럼 일반인과 다른 남다른 능력을 지닌 소수가 활약하는 영웅상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물론 <기묘한 이야기>에서도 초능력(염력)을 쓰는 소녀 엘(일레븐)이 등장한다. 엘은 이미 시즌2에서 뒤집힌 세계를 엄청난 초능력으로 봉인하는 능력을 보인 바 있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지닌 엘은 자신의 친구들과 그 주변에 닥친 위협에 맞서 쌍코피가 아니라 과다출혈이 되는 상황에서도 당연히 희생을 감수해야 할까? 영웅주의 드라마나 영화가 영웅의 희생을 미화하는 모습에 강한 혐오를 느끼는 나로서는 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그 사람만 맞서 싸우는 상황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예를 들어 수영을 어마어마하게 잘한다고 해서 자신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에 빠진 모두를 그 사람 혼자서 건져 올린다는 건 내 기준에서 옳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기묘한 이야기 시즌 3>가 너무 맘에 든다. 시즌 3에서 초능력을 쓸 때마다 코피를 흘리는 엘에게 너희는 엘의 초능력을 이용하고 있다며 초능력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는 마이크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시즌 3의 마지막화에서 엘은 초능력을 잃게 되지만 친구들은 엘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 자포자기하지 않고 어마 무시한 마인드 플레이어라는 적에게 맞서기를 멈추지 않는다.
솔직히 내 앞에 그런 괴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에 그림 많이 그린 사람이 내 주변의 누군가를 겁박한다면 나는 그에게 대응할 수 있을까? 내 한 입 조용히 다물고 그저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자라목을 하게 되지 않을까? 현실에 비겁한 나와는 다르게 <기묘한 이야기 시즌3>의 주인공들은 참으로 바람직하게 용감하다.
엘과 맥스 등이 숨어있는 곳에 마인드 플레이어의 촉수가 닿기 직전 루카스는 일어나서 새총을 날린다. 물론 마인드 플레이어의 숙주가 된 빌리가 친구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새총을 쏴서 적의 공격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가장 어리고 사랑스러운 에리카는 어떠한가. 스티브와 로빈이 러시아의 비밀조직에게 잡혀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탈출을 미루고 그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체격이 너무 말라서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낸시조차도 보통 영화에서 위험에 빠지면 예쁘게 울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여성들과는 달리 장총과 화약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3>는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도 서로를 위해 언제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 사실이 바로 그 어떤 히어로물보다 나를 감동시켰다.
요즘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존재(사랑과 우정 그리고 믿음과 희생)한다는 사실을 나는 <기묘한 이야기 시즌3>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이 시즌3을 이끄는 사건에서가 아니라 그 사건 속에 놓인 인물들 간의 케미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3>의 케미!
1. 조이스와 짐(호퍼)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초등학교 동창이지만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둘이 다투면서 생겨나는 썸의 분위기는 주변 사람 모두 사랑이 싹트고 있음을 눈치채게 만들지만 둘은 서로의 감정을 부정하는 사랑 부정기를 겪는 인물들이다. 소중한 것을 잃었던 경험이 있기에 현재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다시 소중한 대상을 잃지 않기 위해 악전고투를 치르며 전우애에 가까운 감정을 쌓는다.
제발 시즌 4에서는 이 두 사람 평범하게 사랑하게 해 주세요!
2. 엘과 마이크
초능력 소녀를 사랑하는 그냥 보통 중간단계의 어른인 마이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물론 연구소에 억류되어 실험쥐와 같은 삶을 살았던 엘은 보통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을 학습해가는 중이다. 아직 완전한 어른은 아니지만 힘을 가진 엘도 힘을 잃은 상태의 엘도 모두 자신이 지켜야 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마이크는 참 멋진 남자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마이크는 호퍼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나 보다.
3. 스티브와 로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 로빈을 보는 순간 첫눈에 비범한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러시아 비밀조직의 암호를 단 하루 만에 풀어낸 수재였다. 머리는 깡통인데 행동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진솔한 스티브와 이성적인 로빈의 조합은 이 시즌 3에서 가장 강력한 웃음코드였다.
4. 알렉세이와 호퍼의 친구(이름을 못 외었음. 죄송)
시즌3의 첫 회에서 러시아의 비밀연구소에서 일하던 알렉세이는 자신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동료 연구원을 목격했다. 동료를 죽인 조직원은 알렉세이에게 1년의 시간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때로부터 일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게이트를 여는 기계를 가동한 알렉세이는 기지에서 짐과 조이스에게 잡혀서 그들과 짐의 친구 집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유를 맛본다. 체리맛 슬러시 대형을 마시며 루니툰을 보는 그는 짐이 체리맛 대신 딸기맛 슬러시를 사 왔지만 이제 괜찮다고 말한다. 그런 알렉세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를 난생처음 놀이공원에서 즐기게 해 준 호퍼의 친구는 알렉세이에게 몬도그를 사주고 싶은 맘에 사러 갔고 그 사이 알렉세이는 조직원의 총에 죽음을 맞는다. 알렉세이……엉엉…. 지못미.
5. 더스틴과 에리카
우연히 얻은 러시아 비밀조직의 암호를 해독했지만 그 비밀창고에 잠입할 방법을 찾지 못하던 중 환풍기 속을 통행할 수 있는 몸집이 작은 에리카를 섭외하는 더스틴과 스티브, 로빈에게 자본주의의 이점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똑 부러지게 밝히는 에리카. 역시 똑 부러진 만큼 셈도 빨라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발 빠르다. 러시아 비밀조직에 잡혀있는 스티브와 로빈을 구출해내는 전략까지 짜내는 시즌 3의 핵심인물. 시즌4가 나온다면 어떤 활약을 벌일지 가장 궁금해지는 인물이 바로 에리카다.
<그래서 말인데요. 시즌 4는 언제 나오나요. >
이렇게 사람 혼을 쏙 빼놓고 시즌 4 안 나오면 완전 대실망이다. 이미 마지막 회 쿠키영상에서 떡밥을 몽땅 집어먹은 나는 벌써부터 기다림 오늘부터 일일… 이러고 있는데 설마 기다리다 망부석 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