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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펀치 와의 예순다섯 번째 만남!

2019 광주 FINA 세계수영 선수권대회 전야제 공연

by 묭롶

2019 광주 FINA 세계수영 선수권대회 전야제를 앞두고 친한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전야제 공연에 아이돌이 나오는데 그것 때문에 공연 전날부터 아이돌 팬덤이 밤샘 줄을 선다는 내용이었다. 로맨틱펀치 공연을 삼 년 정도 다니면서 아이돌과 겹쳤던 스케줄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공연은 아직까진 없어서 나는 별생각 없이 조금 일찍 공연장에 가면 되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오후 한 시 넘어 5.18 민주광장 특설무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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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착석이 안된다는 스텝의 말에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니 이런 이날 공연은 아이돌 팬덤의 요청으로 입장 순서를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게 되었다. 부랴부랴 팔목에 적어주는 번호를 기다려서 받았는데 한 시 반에 받은 번호가 192번째……무대 옆 종각이 있는 정자에는 모기 스프레이로 무장한 채 밤을 새운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돌 팬덤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밤샘 줄의 실체를 목격하고서야 나는 이날 로맨틱펀치를 앞자리에서 본다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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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야제 공연은 광주 MBC 난장 팀에서 촬영과 행사를 진행했지만 행사 관련 보안은 광주광역시에서 맡은 상황에서 그동안 여러 차례 공연을 통해 안면을 익힌 보안팀이었지만 이 날따라 굉장히 경계가 삼엄했고 보안팀 직원들도 신경에 날이 서 있었다. 공연을 보는데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러블리즈의 공연이 끝나고 위너의 공연순서 앞으로 두 팀의 아티스트만 남은 상황에서 내 주변에 있던 위너 팬들이 통제를 벗어나 일제히 의자를 들고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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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날 앞에서 여섯 번째 줄에 앉아 있었는데 내 주변은 온통 위너 응원봉을 든 중국 팬들이었고 나 혼자 섬처럼 그 안에 끼여 있다가 팬들이 갑자기 통제를 무너뜨리며 앞으로 뛰기 시작하자 난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 당황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바닥에 놓여 있던 내 가방이 넘어지고 앞사람 의자에 걸려서 질질 끌려가고 내가 들고 있던 카메라 렌즈캡이 앞으로 튀어 날아가는 등 나는 그 와중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아이돌 팬덤을 온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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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공연 중 나는 보안팀의 통제가 무너지는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터라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자리가 강제 밀착이 되면서 그나마 앞사람들의 머리 사이사이로 보이던 무대의 시야가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하필 로맨틱펀치 출연 순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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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펀치는 이날 <라즈베리 비트>, <We are the champions>, <토요일 밤이 좋아> 이렇게 세 곡을 불렀다. 로펀을 보겠다고 경기도 광주에서 전라도 광주로 내려오던 중 친한 팬 언니는 휴게소에서 발목을 접질려서 골절로 전치 6주가 나왔지만 공연을 보기 위해 아픈 다리를 절며 공연장에 도착했다. ㅜ.ㅡ 언니 ㅜ.ㅡ 엉엉 이날 다리를 다친 언니의 남편, 즉 형부는 지난 그린플러그드 공연 때 로펀 팬들의 자부심인 깃발을 들다가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발을 밟혀서 발목 아킬레스 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는데 형부에 이어 언니까지 부부가 나란히 깁스를 하게 되었으니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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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로펀 공연은 그 무엇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실 로펀이 공연 전 리허설을 해도 그렇게 길게 하지를 않는데 이날은 웬일로 <몽유병>과 <토요일 밤이 좋아>를 전부 들려주었다.

세 곡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올 팬들을 위한 로펀 멤버들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리허설 때 올라온 로펀을 보고 너무 좋아서 아이돌 팬덤 속에서 섬처러 고립되어 있던 내가 마구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자 주변에서 핸드폰에 고개를 묻고 있던 아이돌 팬덤들이 나를 마구 째려봤다. 째려본들 어쩌겠는가. 내가 좋아 죽겠는데, 자기들도 좋아하는 아이돌이 올라오면 나보다 더할 거면서. 흥칫뿡. 그러거나 말거나 난 sel70200g 렌즈로 멤버들 모습을 중간중간 찍기 바빴다. 무대가 멀때마다 sel100400g(백사금)에 뽐뿌가 와서 큰일이다. 이 렌즈는 body보다 더 비싼데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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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때 안 찍었으면 난 건질 사진이 한 개도 없는 공연이 될 뻔했다. 그나마도 무대가 너무 멀어서 인스타에 올린 사진들은 전부 십 분의 일을 크롭 해서 확대한 사진들이다. ㅜ.ㅡ

가까이에서 찍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도 광주에서 하는 공연인데 나로서는 오후 반차를 내는 게 최선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로펀은 부산에서는 공연을 자주 해서 부산에서는 인지도가 나은데 광주 공연에서는 첫 곡 <라즈베리 비트>를 할 때는 핸드폰을 보기 바쁘던 사람들이 <We are the champions> 때는 가창력에 놀라서 고개를 들고 무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 공연을 보던 사람들도 그제야 <불후의 명곡> 출연 사실을 기억해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그럼요. 가창력 하면 로펀이죠. 오죽하면 난장팀이 로펀을 그리 사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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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이 좋아>의 시작 전주에 맞춰 보컬 배인혁 님이 생수병을 들어서 물을 잔뜩 들이켰다가 상공에 뿜을 때는 이미 내 주변은 국적, 나이, 성별 다 떠나서 다들 이성을 잃고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저 뒤에서 웅성웅성 아주 멋지다고 여기저기서 로맨틱펀치 대단하단 얘기가 들려오자 나는 로펀 부심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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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배인혁 님은 ‘2019 광주 FINA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라는 제목이 길고 어렵다고(사실 이날 무대에 오른 가수님들 대부분이 이 명칭을 한 번에 쓱 얘기하지 못했다는) 얘길 하면서도 이 대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선곡했다고 <We are the champions>를 들려줬는데 정말 탁월한 선곡이었다. 다 함께 부르는 떼창의 감동이 5.18 민주광장에 가득 차서 물결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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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전 MC분이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님을 무대 위에 올라와서 홍보할 팬을 신청받는다고 했을 때 나는 엄청난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올라가서 우리 밴드 홍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미 너무 여러 번 매체에 노출된 탓에 회사에서 눈치가 보인 상황이라 나주 공연 때처럼 손을 마구 들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역시 광주 공연이어서 이날 공연장을 찾은 회사 사람들이 다 수였다는 소식을 그다음 날 접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난 무대 올라갔으면 ……. 주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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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역시 무대의 범위가 넓은 가수님 답게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관객들 손 일일이 잡아주는 배인혁 님이었다. 나는 저 멀리 뒤에서 보이지 않는 가수님을 안타까운 눈동자를 나노 단위로 굴리며 찾고 있었고 공연은 심적 기준으로 삼초만에 끝나버렸다. 아~~ 밀착되어 공간이라고는 없는 자리에서 탈출하기 위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나는 공연장을 탈출했다. 좋아하는 밴드가 내가 사는 동네에 왔는데도 편히 보지를 못하고 사진도 망하고 이래저래 참으로 마음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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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로펀의 인지도가 낮은 이곳에서 만 명 넘게 모인 인파 앞에서 그것도 역사적으로 뜻깊은 5.18 민주광장에서 로펀이 멋진 무대를 펼쳤다는 것에 큰 위안을 삼는다. 2019 광주 FINA 세계 수영 선수권대회의 홍보대사를 맡은 성훈 님도 로펀 공연을 처음 봤는데 정말 대단한 무대라고 칭찬을 했으니 이날 이 공연 보신 광주사람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오신 분들 모두 로맨틱펀치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라.

PS: 와~ 아이돌 팬덤은 역시 대단하다. 중국에서 단체로 온 위너 팬들을 위해 전문 통역사까지 현장에서 활약했다. 중국 팬들 옆에서 계속 번호표 받는 것 다 도와주고 광주광역시가 참 준비를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PS2: 현장통제에 삼엄했던 보안팀을 보며 왜 오늘따라 저렇게 각박할까 싶었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는 통제를 보며 사고가 안 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다음에는 아이돌과 겹치는 공연이라면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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