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아이가 있다. 남편이 마흔이 되던 해 태어난 이 아이를 낳았을 때 과연 언제 키워서 초등학교를 졸업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내 나이 마흔아홉, 딸의 졸업을 앞두고 졸업선물을 고민하다 여행을 계획했다. 내가 쓰는 여행기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
23.12.30 (광주 - 서울 KTX)
- 블루스퀘어신한카드홀 (뮤지컬 레미제라블 관람)
-> 이태원 저스틴 스테이크 저녁 식사 -> 신라스테이 마포 숙박
여행을 결정한 뒤 제일 첫 번째로 한 일은 12월 12일 KTX사전예약이었다. 락밴드 공연을 다니던 시절 연말 공연에 갔다가 내려오는 표가 없어서 고생했던 경험이 있던 나는 그 이후로 서울에 갈 때면 무조건 왕복표를 먼저 준비해 왔다.
출발하는 12월 30일 전날부터 수도권에 많은 눈이 내렸다.
KTX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여러 곳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몸상태가 별로였던 딸 덕분에 곧장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로 이동했다.
1시 정도에 블루스퀘어에 도착해서 딸과 눈싸움도 하고 예매한 티겟도 찾은 뒤 본격적으로 포토존 탐색에 나섰다.
블루스퀘어 11열 오른쪽 사이드 40.41 열 시야는 눈이 나쁜 나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이 더 나은 딸은 배우들 표정까지 잘 보였다고 했다.
주연인 장발장역의 민우혁 배우는 큰 체격만큼이나 큰 성량으로 홀 전체를 채웠다. 줄거리 상으로 무거운 뮤지컬의 분위기를 중간중간 떼나르디에가 관객을 웃게 만들었다.
알고 보는 줄거리지만 라이브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의 감동은 기대이상이었다.
두 시간의 공연 후 이십 분간의 인터미션 그리고 그 후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연말공연이어서인지 블루스퀘어홀은 전석이 만석이었다. VIP석이 한 장당 18만 원이니 한 회차당 매출액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공연이 끝난 뒤 지하철로 한 코스 거리인 이태원에 있는 한우 스테이크 전문점인 저스틴 스테이크로 이동했다.
연말인 관계로 이곳도 네이버를 통해 사전예약했다.
이태원역을 빠져나오자마자 해밀턴 호텔 전면에 설치된 이태원참사 추모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역 출구에서 저스틴 스테이크로 이동하는 길은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고 빙판이었기에 딸과 나는 철제난간에 매달려서 한 계단한계단 조심스레 내려가야 했다.
해밀턴호텔 맞은편 대로변 이면은 개미굴처럼 좁고 구불구불하며 경사진 골목길이 즐비했다. 이 좁은 길에 인파가 몰렸다는 상상만으로도 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 좁은 길에 사전대비 없이 인파가 몰렸다니 인재가 아닐 수 없다.
저스틴 스테이크는 이태원역 출구 아래 골목에 위치해 있었고 원래 예약시간보다 삼십 분 빠른 여섯 시에 도착해는데도 자리가 이인석 한 곳뿐이었다.
우리는 한우스테이크와 랍스터 테일 그리고 해산물스파게티에 하우스 와인과 레몬티를 주문했다.
아웃백에 가면 미국산 스테이크를 인당 오만 원은 주고 먹어야 하는데 그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이었고 스테이크 가성비는 좋았지만 스파게티는 해감이 덜 되었는지 씹히는 이물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잔에 육천 원 하는 하우스와인이 대박 맛있어서 나는 두 잔이나 마셨다.
저녁을 먹고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지하철을 타고 신라스테이 마포로 이동했다.
지하철 역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바로 꺾어서 옆에 있던''신라스테이 마포는 그야말로 업무용 출장자를 위한 잠만 자는 곳이었다. 와이파이는 따로 잡지 않아도 되지만 룸서비스 없는 곳은 처음이었으니. 난 방문을 열자마자 슬리퍼를 찾아 이곳저곳을 뒤져야 했다.
러시아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곳곳에 열고 닫는 서랍 속에 숨어 있던 옷장과 슬리퍼라니,
그래도 허브향이 나는 어메니티가 좋아서 나도 딸아이도 오랜만에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했다.
12월 31일 : 신라스테이 마포 ->롯데월드-> 집
그렇게 또다시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곱 시 조금 넘어 조식 뷔페를 하는 곳으로 내려갔다. 뷔페홀은 크지 않았고 메뉴도 많지는 않았지만 간단하게 먹기에는 좋았고 특히 쌀국수 국물이 해장에 딱이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 뒤 롯데월드 개점 시간에 맞춰서 지하철을 타고 롯데월드로 갔다. 사전에 표를 애매해 놓은 덕분에 밀리는 매표소를 건너뛰고 입장을 한 우리는 짐을 보관소에 맡긴 뒤 자이로 드롭을 타기 위해 서둘렀다.
에버랜드는 T익스프레스를 타야 본전이고 롯데월드는 자이로드롭을 타야 본전이란 생각에 서둘러 찾아간 놀이기구 앞은 텅 비어 있었다. 내린 비로 인해 좌석이 젖어 있어서 운행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다른 놀이기구에 줄을 서고 있을 때 나는 곧 운행이 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줄을 서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직원들이 수건을 들고 나와 자이로드롭의 좌석을 닦기 시작했다. 십여 분 후 우리는 그 좌석에 앉을 수 있었고 나의 부푼 기대처럼 높이 정상까지 올라간 자이로드롭은 정상에서 잠시 멈춘 뒤 이 생에서의 마지막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360도 서서히 회전하며 주변 경관을 보여주었다.
롯데 타워를 옆으로 석촌 호수로 내리 쪼이는 햇살아래 놀이기구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매서웠다. 잠깐의 설렘과 흥분도 잠시 정확히 1.5초 후 놀이기구는 정상에서 바닥에 도착했다.
너무 아쉬웠다. 열 번은 연속 타고 싶었지만 이미운행재개를 눈치챈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탓에 나는 아쉬움을 질질 끌고 자이로스윙으로 향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이로드롭보다 자이로스윙이 더 재미있었다.
빙글빙글 돌면서 주변관광 다 시켜주는 재미가 꿀이었다.
놀이기구 두 개를 타고난 뒤 주변을 보니 이제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더는 놀이기구 타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한 나는 실내로 이동하기로 했다.
연말 롯데월드는 내국인보다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중국관광지에 내가 찾아간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리고 정말 놀랐던 건 중국관광객들 포토존 비매너였다.
다들 줄지어 엄청 오래 기다리는 중이니 빨리 찍고 다음 순서에 양보가 기본인데 이건 뭐. 대여섯 명 기다리다 단체 열 장쯤 찍고 뒤에 한 명씩 각자 앞. 뒤. 선글라스 썼다 벗 있다. 포즈 열댓 가지 취한 뒤. 또다시 두셋씩 따로 찍고 매번 이런 식이니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치사하면 안 찍으면 그만이지만 앞에서 그런 줄 모르고 한참 기다리다 본전 생각에 기다렸지만 천불이었다.
난 그전까지는 놀이공원에 와서 왜 교복 입고 사진을 찍는지 몰랐다. 딸내미 교복으로 갈아입고 사진을 찍은 뒤에야 와~사진 잘 나오네 가 절로 나왔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실내도 구경하고 퍼레이드도 구경한 뒤 아마존 익스프레스 짝퉁 비슷한 걸 타고나니 어느새 내려갈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까진 짐 찾고 지하철 타고 시간이 넉넉하다 생각했는데 지하 일층부터 지상 이층까지 몇 바퀴를 돌아도 짐보관소를 찾을 수 없었고, 넘치고 치이는 인파에 눈이 빙빙 돌 지경이었고 매장 직원에게 수십 번 물어도 그 많은 보관소 중 어디가 맞는지를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보관소 못 찾겠다 싶을 때는 무조건 보관키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부터 하기를 강추합니다.
진즉 그리할 것을 고생한 나 자신 원망하며 우리는 KTX출발 칠 분 전에 승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 못 찾아서 기차 못 탈까 봐 맘을 졸였던 딸내미는 기차 타자마자 떡실신하고 일박이일의 짧은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