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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by 묭롶


나는 얼마 전 자동차 3단계 완전자율주행이 국토부 승인대기중라는 기사를 읽었다. 불과 운전뿐 아니라

과거 인간에 의해서만 작업이 가능했던 영역은 갈수록 기계로 대체되고 있으며, 알파고 바둑 대국처럼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사고(思考)의 영역마저도 기계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학교교육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사고(思考)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교육받아왔다. 하지만

알파고로 대표되는 슈퍼컴퓨터(알고리즘)의 등장으로 더 이상 지구의 생물군 중 인간만의 비교우위를

점치기가 힘들어졌다. 사실 슈퍼컴 앞에서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는 도토리 키재기만큼이지 않을까?


이쯤에서 나는 생각해 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은 무엇일까? 앞으로의 기술발전을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 상황에 비춰볼 때 아직까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 즉 글쓰기는 당분간은 인간만의 영역에 머무를 거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케르베로스〉


머리가 세 개인 이 개는 모든 사물을 받아들이고 집어삼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나타낸다.


그런데 그것이 헤라클레스에게 굴복했다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은 시간을 초월한 승리라는 것과


그것은 후세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것임을 의미한다.」 p83




인간에 의한 모든 창작물 중 특히 글쓰기(문학)는 상상력을 글로 구체화시킴으로써 인간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데 영향력을(예:1968년 제작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펼친다. 현재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내는데 인간의 상상력이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과거 중세 봉건 기를 살던

사람들이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을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을 현실로 만드는 건 바로 인간의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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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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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세 자매: 파르카스>



그런 인간의 상상력을 살찌우는 것이 바로 문학(글쓰기)이다. 그 문학적 힘을 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기원전부터 1900년도 초반까지 인류의 문헌과 기록에

남아있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카프카의 상상동물>


~가끔 나는 이 동물이 나를 길들이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만일 그럴 의도가 없었다면 왜 내가 꼬리를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으려고 방향을 싹 틀었다가는


조용히 앉아서 내가 다시 꼬리를 잡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 또 방향을 틀곤 했겠는가.


프란츠 카프카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1953. 」 p24





우리가 흔히 접해온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케르베로스나 메두사, 미노타우르스, 스핑크스

부터 일각수 유니콘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담긴 동물의 종류와 수는 엄청나다.

그리고 각각의 동물들이 기록된 문헌(기원전부터 1900년 초)이 수록됨으로써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인간의 상상력이 구체적인 형태로 기록되고 구현(글, 그림, 노래, 설화, 민담)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상상동물』들은 지금도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됨으로써

인간의 상상력이 지닌 확장의 힘은 그걸 접한 사람의 상상력을 증폭하는 기폭제이자 촉매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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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 판타지 장르에 해당하는 책들 속에서 『보르헤스의 상상동물』에 나오는

동물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채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인간은 상상함으로써 과거로부터

이어져내려 온 커다란 상상력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또 그러한 상상력의 흐름이 인류의 미래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설계해 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브라우니는 인간의 시중을 드는 갈색 난쟁이들을 지칭하는데,


바로 그 색깔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유명한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브라우니가 그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 주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슨이 꿈을 꿀 때면 브라우니가 그에게 환상적인 테마를 건네주곤


했다는 것이다. 」 p73




그런 면에서 후대를 위한 교육은 어른이 되어서도 꿈꾸는 걸 멈추지 않도록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영역인

상상력에 제동을 걸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망상이나 몽상을 권장하는

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건강한 상상력을 길러내자는 뜻이다. 갑자기 딸아이에게

해줄 말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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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보르헤스의 상상동물』은 게임에도 많은 영향을 펼친 것 같다. 내 게임 캐릭터 직책이

"발키리"(게임 속 전투신관 캐릭터)인데, 이 책에서 그 명칭의 유래를 확인하게 되었다.


ps2: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사십 대에 시력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현실은 암흑이었겠지만 그 어둠 속에서 그만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집중하며 그걸 펼칠 수 있었을

보르헤스의 작품세계를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짐작해 본다. 어쩌면 그가 평생 동안 단편만을 썼던

이유도 그 단편 하나하나에 담긴 메타포의 확장성이 이미 독서의 과정을 통해 장편의 분량으로

펼쳐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짤막한 글을 읽고도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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