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 다나스를 뚫고 사천을 다녀오다. >
2019년 7월 20일 로맨틱펀치가 사천대교공원에서 열리는 사천 록 페스티벌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길 찾기부터 해 보았다. 로펀 공연이 잡히면 공연장의 거리보다는 언제나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우선해서 검색해보았는데 역시나 사천은 자가용이 아니면 가기 힘든 곳이었다. 더군다나 다가오고 있는 태풍 다나스의 진행방향이 딱 전라도 광주에서 사천으로 가는 길과 경로가 같았다. 태풍 경로와 겹치는 길을 가겠다고 하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의 공연 라이프를 응원하시는 시어머니마저도 나의 사천행을 만류하셨다.
그렇다고 사천행을 포기할 나는 아니었지만 운전이 워낙에 미숙한 데다가 길치 인터라 걱정이 되긴 했다. 공연 전날 밤새 잠을 못 자고 한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태풍의 경로를 검색했다. 드디어 공연 날 아침 7시에 나는 차를 몰고 사천으로 향했다. 경상도로 가는 길은 고도가 높은 지리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평소에도 비가 오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폭우로 쏟아지는 지리산(여름에 비만 오면 계곡물이 삽시간에 불어나서 사고가 자주 나는)인지라 출발 때부터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와이퍼를 삼단으로 작동하고도 시야 확보가 안돼서
운전을 포기하고 갓길에 비상등을 켠 채 멈추는 차들이 속출했다.
수막현상으로 타이어가 헛돌고 옆 차선에서 물벼락이 날아오고 앞은 보이질 않고 이 비를 못 뚫고 여기서 생 마감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비가 쏟아부었다. 그나마 살아서 사천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졌지만 이내 다시 푹 우가 쏟아지면서 나는 사천대교의 장관을 보지도 못하고 운전대만 부여잡아야 했다. 원래 사천 록 페스티벌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사천대교 무대에서 펼쳐질 예정이었지만 태풍으로 인해 공연장이 삼천포 실내체육관으로 변경이 되었고 사천대교에서 공연장까지 약 6킬로미터의 길은 가로등도 없는 구불구불 산길이었다.
공연 얘기를 해야 하는데 공연장까지 갔다가 오는 길의 여정이 지금까지의 로펀 공연길 중에 가장 혹독(목숨을 걸었다고 해야 하나)했기에 얘기가 길어지고 있다. 아무튼. 그 문제의 가로등 없는 구불구불 6킬로를 공연이 끝난 후 또다시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고 되돌아오는 길. 하이빔을 켜놓고도 보이지 않는 차선과 시야로 인해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려야 했다. 물론 폭우로 인해 엉금엉금 기어가느라 집에 가는 길이 참으로 길고도 멀고 험했다. 아아아아아 운전능력 강제 업그레이드된 날이라고나 할까.
<태풍보다 강력했던 로맨틱펀치의 공연>
사천 록 페스티벌에 로펀 다음 순서로 YB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폭우를 무릅쓰고 일찍 출발했건만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이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표를 받고 보니 오전 10시 30분, 로펀은 저녁 7시 30분 출연 예정이었고 공연까지 대략 9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앞 줄을 잡겠다고 나는 그때부터 공연장 입구에 앉아서 기다렸다.
다섯 시 삼십 분 공연장에 입장해서 일열을 잡은 나는 로펀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온전한 화소로 담고자 했으나 역시 이날도 7개의 앰프에서 터져 나오는 엄청난 음향과 엄청난 스모그 그리고 엄청난 조명 속에 나의 희망은 날아가버렸다. 특히 체육관 바닥이 트램펄린처럼 흔들렸다고 하면 이날 공연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바닥 덕분에 초점이 맞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사천에 다녀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은 망했지만 그만큼 뜨겁고 멋진 공연이었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열광적인 관객들을 나는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아티스트가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무대를 보는 관객들이 무대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호응을 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다. 일반적으로 무대 위에서 아티스트들이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데 이곳 사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뛰고 소리 지르고 핸드폰 불빛을 비춰 흔들고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기쁨을 나는 맘껏 미치게 누렸다.
사천 문화재단은 사천 록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사천대교에서 매주 다양한 공연들을 기획하고 선보이는데 아마도 문화공연을 자주 접하는 사천시민분들이셔서 문화시민으로서의 의식이 높아 보였다. 실제로 이날 공연은 아티스트들을 응원하는 팬들보다 남녀노소를 떠나 가족단위 일반 관객분들이 대다수였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공연이 주는 기쁨을 한껏 누릴 줄 아는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보는 내내 밖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지만 실내체육관에는 태풍보다 뜨거운 에너지가 한데 어우러져서 곧 우주로 발사될 분위기였다.
<로맨틱펀치가 갖는 대중친화력과 대중성>
내 뒤에 있는 관람객분들도 아들과 두 명의 딸 그리고 엄마까지 함께 한 가족단위 관객이었는데 아들이 YB를 좋아해서 경남 진주에서 보러 왔다는 얘길 하셨다. 그래서 나는 로맨틱펀치를 보러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고 얘길 했더니 "아~~~ 맞다... 그 노래 잘하는 밴드 맞죠?"라고 답하셔서 나는 또 신이 나서 "그럼요. 무려 불후의 명곡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밴드예요. 이따가 로펀 나오면 정말 신나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우리 보컬님 센스 있게 원래 예정됐던 셋 리에 없던 <We are the champions>를 부를 때 내가 뒤돌아보자 나랑 얘길 나눈 관객분이 고개를 마구 끄덕이시며 엄지 척을 해주셨다. 엉엉.... 사랑합니다.
로펀은 <몽유병>, <파이트 클럽>, <라즈베리 비트> , <We are the champions> , <굿모닝 블루>, <그대에게>를 불렀다. 아~~~ 정말 너무 신나게 뛰어노느라 서로 옆사람 팔에 치이고 발에 밟혔지만 그 누구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섞이고 섞여 하나가 된 것만 같은 끈적한 과즙의 그 맛 속에 퐁당 빠져버린 듯 한 시간이었다. 1층 스텐딩 석이 흥분의 도가니 탕이 되는 동안 2층과 3층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일어서지 못하는 대신 핸드폰 불빛을 열심히 흔들며 공연에 함께 했다. 깜깜한 밤에 허공에 떠 있는 아름다운 반딧불처럼 공연장을 수놓은 무수히 많은 불빛들이 주는 감동이 노래의 멜로디와 함께 내 마음속에 물결쳤다.
관객 호응이 이 정도였으니 우리 밴드는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연주가 허공을 찢고 뛰쳐나올 것처럼 박력 넘치는 기타 연주를 선보인 콘치 님, 레이지 님, 유재인 님 그리고 드럼 스틱 안 부서지긴 게 이상할 정도로 현란한 드러밍 보여준 트리키님과 역시 무대장치를 타고 높고 더 높은 곳에 올라 2층과 3층의 관객들에게까지 인사를 건넨 보컬 배인혁 님까지 너무 멋있고 신났다는 기억 외에는 기억이 사라지고 말 정도로 좋았던 공연이었다.
<라즈베리 비트>에서 관객들이 함께 하는 반복 소절 "Go together and better on Raspberry Beat!!! "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곡이 신곡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떼창으로 함께 하는 관객들을 보며 보컬 배인혁 님은 사천 공연이 태풍 때문에 취소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렇게 멋진 무대 함께 해주셔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한동안 잘 부르지 않던 <굿모닝 블루>를 요즘 자주 부르는데
"Hello my shadow sorrow hollow
Hello my shadow sorrow hollow"
이 부분에서 관객들 모두가 제자리에 앉았다가
"오 나의 슬픔이여 안녕"
이 부분에서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올라 손을 흔들며 '안녕'을 외치는 퍼포먼스가 엄청나게 멋져서 최근에 관객이 많은 공연에서는 꼭 불러주는데 뛰어오르길 기다리며 앉아있다가 뛰어오를 때의 짜릿함은 <굿모닝 블루> 퍼포먼스 함께 해보신 분들만이 아실 것이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신 분들 담달부터 줄줄이 있는 로펀 출연하는 락페에 오시면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파이트 클럽> 때 관객과 함께 외치는 "건배~~~~~!!!" 부분에서는 관객들 모두 신나게 건배 외치며 손을 들어 올렸지만 특히 약주 좀 드시는 분들(주로 내 연배 남성분들)이 제일 신나게 해맑은 표정으로 건배를 외쳐서 혼자 공연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왜냐면 그분들이 로펀 전에 출연했던 "피싱 걸스"라는 팀의 노래 가사 중
"오빠 천오백 원만 주세요. 소주 사 먹게~~~"라는 후렴을 신나서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건배와 소주 사 먹게는 진심 어린 떼창으로 따라 불렀다는........... 크읍..... 결국 집에 도착하자마자 새벽 두 시에 소주 마시고 잔 거는 안 비밀!!!
원래 밴드나 가수들의 경우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의 연령층 구성이 거의 비슷한 나이 때로 이뤄지는 반면 로펀은 작년부터 팬이 되었다는 올해 아홉 살인 친구부터 중학생 그리고 중년을 넘어선 어른들 가지 그 팬층이 다양하다. 이날 내 뒤에 있던 어린 친구들은 공연이 조금은 힘들었던지 계속 집에 가자고 엄마를 조르다가 로펀 공연 때는 얼마나 신나게 뛰어노는지 집에 가자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로펀 공연을 즐기는 어린 친구들을 보며 나는 로펀이 지닌 대중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불후의 명곡>과 <열린 음악회>등에 출연하고 있지만 로펀의 공중파 출연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내가 로펀을 통해 느꼈던 음악적 에너지를 보다 많은 사람이 느끼고 그들의 삶이 더 밝고 따뜻(뜨거워)해졌으면 좋겠다.
<2019. 07. 20 사진: body: sony a 7 r3 -렌즈: sel24105 g iso 8000-셔속:80, 화이트 밸런스: 오토>
아~~~ 정말 로펀 공연을 갈 때마다 렌즈도 고민이지만 워낙 움직임이 0.03초 AF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인
로펀인지라 셔속 숫자를 높이면 사진에 노이즈가 생기고 셔속을 낮추면 건질 수 있는 사진이 거의 없는데
이날은 스모그와 조명이 엄청나서 렌즈가 스모그까지 전부 데이터로 담아내는 바람에 사진이 전부 뿌옇게
돼버렸다.
더불어 실내체육관 바닥이 엄청난 관객 반응으로 인해 춤을 췄으니 초점은 죄다 날아가버렸고 겨우 블로그용 사진이라도 건져보자고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아름다운 나의 락밴드를 잘 담아내고 싶은 나의 욕심은 이날도 욕심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빗길 왕복 운전으로 인한 긴장과 목에 걸고 뛴 카메라의 무게 덕에 나는 일주일 내내 목이 아팠다.
그래도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나는 로펀을 담는 걸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찍다 보면 나 같은 똥 손도 그나마 나아지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로펀이 무대를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과 수고로움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도 조금씩이나마 더 열심히 배워볼 것이다.
<라즈베리 비트>
<몽유병>
<We are the champions>
<토요일 밤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