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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의 <오뒷세이아>

어린 시절 2D로 본 영화를 4D로 다시 보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느끼다.

by 묭롶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해서 <숲> 출판사에서 출간된 <오뒷세이아>를 인터넷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떠올랐다. 내가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신들은 일반적인 종교에서 내세우는 절대자와는 동떨어진 존재들이었다. 완벽한 절대자라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지닌 불사의 존재라고나 할까. 인간처럼 사랑을 하고 시기와 질투도 하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의 모습이 어린 시절 내 눈에는 참으로 신기했다.


오딧세우스의 귀환을 다룬 이 이야기는 출간된 대부분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록된 많은 일화 중 하나로 실려있다. 하지만 <숲> 출판사에서 출간된 <오뒷세이아>의 67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을 접한 나는 2D로 보던 영화를 4D로 다시 보게 된 기분이 들었다.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6세기경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시처럼 행의 번호가 기재되어 있으며 음유 시의 반복되는 구절처럼 반복되는 문구들이 존재한다. 이 이야기는 <오뒷세이아>가 대하드라마 <토지>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본격적인 대항해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한 시기보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인간은 새로운 곳을 탐색했으며 낯선 이들과의 교류를 권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나그네여! 그대보다 못한 사람이 온다 해도 나그네를 업신여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모든 나그네와 걸인은 제우스에게서 온다니까요. ] p337


[“텔레마코스! 확실히 저 새는 신의 뜻이 없었다면 그대의

오른쪽으로 날아오지 않았을 것이오. 나는 저 새를 보는 순간

전조의 새임을 알았소. 이타케의 나라에는 그대의 가문보다 더

왕다운 가문은 달리 없으니 그대들이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오.” ] p381




이방인을 신이 보낸 사자이거나 신이 변장을 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며 이방인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대목을 이 책에서 정말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시기에는 이방인에 대한 터부나 금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분명 동일 시기의 고구려를 비교해 볼 때 내게는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물론 삼국시대인 신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도 신탁을 받는 존재인 ‘미실’이 등장한다. 하지만 동일 시기 우리나라가 의지했던 신탁의 주체가 ‘하늘’이었던 반면 <오뒷세이아>에는 정말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더군다나 이 신들은 인간과 교류하여 자식을 낳기도 하고 자신이 호감을 갖는 인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펼친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신들이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후원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보호하는 영웅을 지키기 위해 다른 신을 견제하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니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 책을 읽고 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오뒷세우스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나무 아래 입을 벌리고 누워 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설령 배가 떨어지더라도 운이 나쁘면 잘못 맞아 코뼈가 부러질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여신들 중에서도 고귀한 칼륍소가 나를 남편으로

삼으려고 자신의 속이 빈 동굴에 나를 붙들어두려 했지요.

마찬가지로 아아이에 섬의 교활한 키르케도 나를

남편으로 삼기를 열망하며 자기 궁전에 붙들어두려 했소.

하지만 그들도 내 가슴속 마음을 설득할 수 없었소.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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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클롭스! 필멸의 인간들 중에 그대의 눈이

치욕스럽게 먼 것에 대해 묻는 이가 있거든

그대를 눈멀게 한 것은 이타케의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라고 말하시오! ] p233


[‘내 말을 들으소서, 대지를 떠받치는 검푸른 머리의 포세이돈이시여!

내가 진실로 그대의 아들이고 그대가 내 아버지이심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면 이타케의 집에서 사는 라 에르 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 주소서!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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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고향 이타케로 귀환하던 중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동료와 배를 잃고 바다를 표류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표류하던 중 사람을 식량으로 삼는 포세이돈의 아들 폴뤼페모스의 눈을 멀게 해서 포세이돈의 분노까지 사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바다를 표류했지만 요정 칼륍소에게 억류되어 귀환의 난이도는 극상이 되어 버렸다. 불사의 신인 요정 칼륍소(예쁘고 몸매도 좋은)가 오뒷세우스를 자신과 같은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주겠다고 꼬드기지만 기어이 집에만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그를 불쌍히 여긴 아테나가 아버지 제우스에게 청원을 넣어 겨우 귀향 길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분노에 불타는 포세이돈 덕에 녹록지 않아서 그는 항해자를 홀리는 세이렌과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등을 아테나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피할 수 있었다. 이래서야 도대체 집에 갈 수는 있는 것인지 고구마 오백 개가 내 명치를 짓누를 때가 되어서야 그의 귀향이 이뤄졌다.



<특이점: 페넬로페의 재혼을 당연시 여기며 강권하는 분위기>


이 책이 쓰인 기원전 6세기의 고구려를 떠올려 볼 때 그 시기에는 여성도 재산을 소유했으며 남성과 대등한 지위를 지녔다고 한다. 그런데 <오뒷세이아>가 쓰인 시기의 그리스는 고구려와 비교했을 때 특이점이 있다. 오뒷세우스는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두고 트로이로 전쟁을 떠나며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자신이 전쟁에서 죽는다면 자신의 아들이 장성한 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녀는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을 하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 뒷 세우스가 전쟁에서 이십 년 가까이 생사를 모른 상태로 돌아오지 않자 그의 집에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와 결혼하려는 구혼자들로 가득 찼다. 엄연히 결혼을 한 상태이며 자신이 재혼 의사가 없는데도 재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아무튼 재혼을 원치 않는 페넬로페는 기지를 발휘하여 남편의 수의를 짤 동안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고 구혼자들을 설득한 후 낮에는 베를 짜고 밤에는 횃불 아래서 짜 놓은 베를 풀기를 삼 년 동안 해오다 그마저도 구혼자들에게 발각된 후로는 더 거센 재혼 요구에 부딪히게 되었다.


아들인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없는 집을 차지하고 앉아 자신의 집안 살림을 죄다 탕진하고 있는 다수의 구혼자들을 내보내지도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재가를 권하지도 못하는 고민에 휩싸여 있다가 아버지를 후원하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귀환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제이슨처럼 돌아온 오 뒷 세우스에 의해 그 많던 구혼자는 단체로 지하세계 하데스를 만나게 되었으니……. 참수 직전의 춘향을 구하기 위해 외쳐진 ‘암행어사 출두요’가 그 대목에서 겹쳐 보였다. 역시 대부분의 옛날이야기처럼 고향에 돌아온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로 <오뒷세이아>는 끝이 났다.




<저항하는 인간으로서의 원형성: 오뒷세우스>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모든 이야기에는 사건이 존재한다. 그 말은 역으로 사건이 없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만약에 오 뒷 세우스가 운명에 순응한 채 바다에서 죽음을 맞았거나 요정 칼륍소의 요구를 팔자려니 받아들였다면 이렇게 장대한 서사시가 완성될 수 있었을까? 공포영화에서 사건은 언제나 금기를 어기는 사람들 덕분에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운명에 순응하는 존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가 없다. 신의 분노를 사고도 귀향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반항심. 저항력을 지닌 오 뒷 세우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불을 얻어 낸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원형성을 지닌 인물이다.


바로 그러한 원형으로서의 오뒷세우스에서 바로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에이헤브 선장이 나왔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의 리유가 그리고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 속 모렐이 나온 것이다. <오뒷세이아>가 갖는 문학적 가치가 바로 이 원형성에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지고 또 앞으로 만들어질 이야기가 모두 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음악이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다양한 변주이듯이 모든 이야기는 <오뒷세이아>에서 싹튼 이야기의 열매이다. 참으로 재미있고 놀라운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내 능력의 한계가 안타깝지만 이 작품에서 파생될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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