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악마]

[레몽 라디게]

by 묭롶

냉동식품을 조리해 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요리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냉동식품을 해동해서 하는 조리와 살아있는 본연의 재료로 하는 조리의 차이를 금방 느낄 테지요. 냉동과 생물의 단적인 차이는 바로 수분에 있습니다. 일단 냉동실로 들어가 버린 재료는 원 재료의

선도를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잃게 되죠.


기억도 그렇습니다. 느끼는 순간의 그 감정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속에 저장되는 순간 그 순간의 느낌을 일정 부분 잃어버립니다. 그 기억을 불러와 문장화하는 작품의 경우는 어떨까요?



포도를 경작하는 사람이 포도의 꽃피고 열매 맺히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고 자신이 가꾼 포도의 첫 열매 맺힘을 맛보는 순간의 포도는 생과(生果)이지만, 이 포도를 거둬들여 포도주로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치면 특정지방의 상표인 예를 들자면 보르도라는 이름의 포도주가 되지요.


문학도 이와 같아요. 기억의 냉동실에 머물던 어떠한 질료를 가지고 수사학적 가미와 발효와 숙성을 거쳐 문장화된 질료는 원 질료서의 성질보다는 어떤 특정한 작가의 문체적 특징을 지닌 2차 가공물이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문장의 대부분이 바로 그 러ㅎ한 2차 가공물의 성질을 띠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많은 문장을 읽는 순간에도 원 질료가 지닌 원래의 향취를 언뜻 느낄 때가 있지요.



마치 잘 로스팅된 커피를 마시며 생두가 채취된 원산지의 기후와 특징적 환경을 느끼는 것처럼요.

아마도 제게는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가 그런 작품이었나 봅니다. 가공식품만 먹다가 조리되지

않은 날것의 재료를 맛본 느낌, 한 겨울에 그 계절에 나지 않는 과일을 한입 베어 물은 느낌, 그 농익은 향취와 뿜어져 나오는 과즙에 감탄하는 순간, 나는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바로 그 느낌을………….



눈이 오던 날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집어 먹고 고드름을 따 먹은 기억.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집 파리똥

나무의 땡땡이 점이 박힌 열매를 따 먹은 기억.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 입은 채로

소변을 눈 기억 등………. 그 강력한 미각과 감각을 지녔던 기억들이 한순간에 막무가내로 쏟아져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느낌을…….


바로 그렇게 팡팡 터지는 그 순간의 느낌을 재료로 즉석요리처럼 쓰인 소설이 곧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입니다.. 그 순간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작품, 그래서 단순하게는 어설퍼 보이기까지 하는 작품.

하지만 꽃이 피어 수정이 되고 열매 맺어 저물기까지의 과정을 그 꽃의 세포 하나하나의 감각에 기대어 쓰인

작품이 바로 작가가 열일곱 살의 나이에 쓴 이 작품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육체의 악마』는 사랑의 발화와 수정, 그리고 열매가 맺히고 사그라들기까지의 과정을

이성의 언어가 아닌 감각의 언어로 기록하고 있답니다. 저는 이 책에 대한 고전주의의 부활이라는 수식어는

실은 가공되지 않은 일차적 표현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가공의 과정만을 문학의 전부라고 믿는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의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이 책의 화자는 불투명합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 책의 화자를 마르트로 놓고 볼 때 이 책의 독서는 참 흥미진진해집니다. 아마 읽어보신 분들은 제 말의 의미를 이해하실 테지요.


Ps2: 레몽 라디게와 연인관계로 알려진 장 콕토는 레몽을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내용을 읽으며 일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의 총독 부인이 쿠르초 말라파르테에게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문득 떠올랐지요.



「“아흐! 선생은 참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이네요.”


독일 제국의 폴란드 왕비가 우아하게 한마디 던졌다.」


『망가진 세계』 p89



레몽 라디게의 사후 일어났던 말라파르테의 소설 속 일화를 통해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처럼 장 콕토와 레몽의

사연이 전 유럽에 큰 화제가 됐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역시 시대를 떠나 타인의 험담은 삶의 큰 활력소인가

봅니다. 그나마 레몽의 작가로서의 역량이 추문에 덥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어 다행이지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