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플러그드 2019: 19.05.19: 난지 한강공원
로맨틱펀치와의 만남을 다음 블로그에 연재해왔는데, 윈도 10으로 업그레이드 후 별 방법을 다 써도 flash
설치가 안돼서 사진 업로드가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다음은 사진 업로드 용량이 장당 10MB라 4K 사진은
대부분 장당 용량이 120MB가 넘어가서 사이즈 축소 작업 후에야 사진을 올릴 수 있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는데 하루 종일 이것저것 다 해봐도 사진 업로드가 되질 않으니 앞으로 브런치에 후기를 올려야 할 것 같다.
올해로 밴드 활동 10주년이 되는 로맨틱펀치는 올해 개최 10주년이 되는 그린플러그드 2019에 출연했다.
그린플러그드가 개최되는 10년 동안 단독 공연과 겹쳤던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아홉 번의 무대에 해년마다
오른 로맨틱펀치는 누가 뭐래도 락페의 꽃이다. 그런 로펀(로맨틱펀치를 줄여서)을 보겠다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서 난지 한강공원 티켓부스에 도착하니 벌써 족히 오백 명은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새벽에 광주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서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 서울 5~10밀리가 온다는 강우량만 믿고 우비도 우산도 준비 안 해왔는데 일기예보가 뒤에 10 단위를 빼먹었었는지 하루 온종일 비가 내렸고 옷은 물론 가방, 신발에 이어 가방 안에 있던 책도 푹 젖고 중요한 카메라 가방도 흠씬 젖고 말았다.
아~~~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오랜 시간 비를 맨몸으로 맞아본 적이 있었을까? 굵직한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지는 통에 눈에 끼운 렌즈가 계속 접어졌다 펴졌다 빗물이 들어가서 시야가 어룽더룽에 그 모든 것이 흠뻑
젖는 통에 그플(그린플러그드 줄여서) 다녀온 후 죄다 방바닥에 널어서 제습기를 틀어야 했다.
심지어 로맨틱펀치 10주년 단독 공연 티켓도 푹 젖었지만 다행히 글자가 지워지진 않아서 잘 말려서 다시 갈무리해두었다. 로펀을 찍겠노라고 가져간 카메라 가방을 부여안고 부디 로펀 순서에서는 비가 좀 덜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잠깐 가늘어졌나 싶던 빗줄기는 다시 굵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카메라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는 내적갈등이 초당 오억 번 스쳐간 순간이었다.
빗속에서 카메라 렌즈를 교체하지도 못하고 밀리수가 짧은 렌즈로 찍으려니 내리는 비에 핀도 안 맞고 초점도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안타까움이 엄습했지만 이날도 로맨틱펀치의 공연은 최고였다. 혹시나 비가 와서 미끄러운데 또 조명기구용 구조물 타고 올라가면 어쩌나 미끄러운 무대에 넘어질까 걱정을 했지만 이날은 관객석으로 가기 위해 무대 위에서 뛰어내리지도 구조물에 오르지 않고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끝도 없이 올라가는 고음과 멋진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롤러코스터 태운 보컬님이었다.
평소 로펀의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특히 페스티벌이 좋은 이유는 바로 RP단상 때문이다. 조명이 들어온
RP단상 위에 올라 레이지 님이 파이트 클럽 기타 솔로를 연주할 때는 그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에 내 몸은 감전당한 오징어처럼 튀어 오르게 된다.
아아아아~~ 끝도 없이 올라가는 고음으로 빗줄기 속에서 <안녕, 잘 가>를 부른 보컬님이 단상 위에 드러누워 노래 후렴구를 부를 때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날 로펀을 일열에서 보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새벽 네시 일어나서 9시에 티켓부스에서 줄을 서기 시작해서 로펀이 출연하는 저녁 7시 10분까지 거의 열 시간 이상을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물론 화장실에 가게 될까 봐 물도 안 마셨다. 옆에서 일열을 사수하던 로펀 팬(롶)들은 차라리 뜨거운 태양 아래서 기다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작년 JUMF(전주 락페)의 뜨거움을 다시 겪는다면 우중 락페가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날은 하루 종일 춥고 축축하고 계속 내리는 비에 얼굴이 하도 많이 씻겨져서 손가락도 쭈글쭈글, 얼굴은 거의 불은 미역이 되었다. 그 몰골을 하고도 로펀이 나오니 좋아서 날고뛰었으니...... 쩝!
내가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다행이지 싶었다. 비를 맞아도 예쁜 로펀 멤버들과는 다르게 장마철 비에 젖은 털 많은 멍멍이처럼 후줄근하게 푹 불은 나는 그래도 마냥 좋았다. 왜냐면 퀸의 'We are the champions'를 들을 수 있어서......... 불후의 명곡에서 이 곡으로 우승을 한 이후로 많은 곳에서 이곡을 불러주기를 희망한다는데 보컬님은 곡이 너무 높아서 매번 고사하고 싶다고 얘길 하고서도 십 년 묵은 체증도 단박에 뚫어버릴
시원한 고음으로 내 귀를 뻥 뚫어놓았다.
사실 비가 내리니 '퍼플레인'이 참으로 듣고 싶었지만 다 함께 떼창으로 부르는 퀸의 노래는 비가 와서 더 감동적이었다. 내리는 빗속에서 로펀을 보겠다고 하루 종일 기다린 팬들은 'We are the champions~my friend'를 부르는 순간 모두가 챔피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 비를 맞고도 하루 종일 서 있었는데 우리가 못할게 무어란 말인가!!!
스탠딩 무대 뒤에서는 로펀의 첫곡 '글램 슬램' 때부터 '슬램'이 진행되어서 장관이 펼쳐졌다. 로펀의 자부심인 로펀의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로펀의 무대가 진행될 때마다 원을 돌고 진을 짜서 서로 온몸을 부딪히며 뛰어오르는 슬램은 볼 때마다 부럽고 해보고 싶지만 그 안에 들어갔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질까 무서운 내 나이를 자각하며 이번에도 그저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굿모닝 블루'를 부를 때 보컬님은 모두 앉았다가 신호를 주면 동시에 위로 솟아오르기를 관객들에게 주문했고 모두 숨죽여 앉았다가 뛰어오르며 함성을 지를 때의 환호는 지금까지도 가슴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통영 언니는 2016년 JUMF에서 호피무늬를 입은 보컬님을 보고 반했다는데, 이날도 호피무늬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보컬님이었다.
물론 안 어울리는 게 없겠지만 빗줄기 속에서 스탠딩 마이크를 들고 무대를 가로지르며 '몽유병'을 부를 때는 에너지 넘치는 날쌘 표범을 보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유연한 몸을 구부려 허공을 향해 도약할 것만 같은 박진감 넘치는 모습에 등장부터 심호흡하기 바쁜 나였다.
그플 공연 전 보컬 배인혁 님은 인스타 라이브에서 로펀 팬을 부르는 명칭인 '롶(ROP)'으로 된 현수막을 만들고 싶다는 얘길 했는데,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부를 때 정말로 인쇄물을 만들어와서 그걸 펼쳐 보였을 때 롶들은 크게 감동받았다. 평소에도 그냥 흘러가는 식으로 하는 말에도 허언이 없던 배인혁 님이었다.
하지만 공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리허설과 녹음 그리고 학교 축제 등 스케줄이 많은 상황에서 팬들에게 한 약속을 지켜낸 보컬님에 대한 감동이 빗줄기처럼 내 마음을 적셨다.
로펀의 공연은 이날도 순식간에 넘어가버렸고 금세 마지막 곡인 '토요일 밤이 좋아'가 돼버렸다. '토밤' 진행 중 갑자기 무대 왼쪽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해서 그쪽을 봤더니 세상에 로맨틱펀치 소속사 대표님인
'윤도현'님이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보컬 배인혁 님은 윤도현 님을 보고는 "형이 여기서 왜 나와"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무대에 오른 윤도현 님은 '토요일 밤이 좋아'를 같이 부르기 시작했고 보컬님은 가사도 모르면서 샤우팅만 하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주자 사람 좋게 웃는 윤도현 님이었다.
도현님의 멋진 콜라보 무대를 끝으로 오늘도 공연은 끝이 났고 나는 푹 젖어있는 내 짐들을 챙겨서 미친 듯이
귀갓길을 서둘렀다.
거의 날듯이 공연장을 빠져나와 용산역에 가기 위해 셔틀을 겨우 타서 기차를 탔다. 물론 기차를 타기 전에
무려 열 시간 만에 화장실도 갔다. ㅎㅎㅎㅎㅎㅎㅎ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인스타 피드를 보니 이게 웬일! 내가 보지 못하고 빠져나온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공연 때 보컬 배인혁 님이 무대에 올라 함께 콜라보 무대를 꾸몄다고 한다. ㅜ.ㅡ 엉엉
안타깝지만 막차를 타고 내려가도 새벽에 도착해서 바로 월요일 출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볼 수 없는 무대였다. 어찌할 수 없이 못 보는 무대였지만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아쉬움 한가득이었다.
벌써 육십 번이 넘게 로펀을 봐왔는데 매 공연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로펀에게 과연 식상함을 느끼는
날이 오기는 할까? 사실 브런치에 작가 도전을 했을 때 정작 내가 책으로 펴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로펀과의 만남이었다. 물론 책을 읽고 그 후기를 적는 건 굉장히 오랜 시간 내가 좋아하고 해왔던 일이지만 이제
거의 삼 년째 만나고 있는 로맨틱펀치라는 밴드가 내 삶에 남긴 흔적을 나는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가 않다.
모두 저마다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로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풀영상을 찍겠다고 캠코더를 사지도 않았을 것이고 풀영상 업로드를 위해 유튜브
활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물론 카메라를 사지도 어도비 유료 콘텐츠를 기웃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잊어버린 채 나이도 내 몸 상태도 내 사회적인 위치도 다 잊고 그렇게 온전히 공연에 빠져드는 경험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겠지.......... 그 누구도 내 삶을 기록으로 남겨주지는 않겠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할 내 삶을 로펀을 통해 경험한 시간을 통해 기록하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뜨겁게 로펀을 좋아하고 그들의 공연을 즐기고 또 열심히 살았는지를 나 스스로 느끼고 싶다. 그플에서 하루 종일 비에 맞아 쭈글쭈글해진 손가락은 마르면 언제 젖었나 싶게 마르겠지만 그 불어 터졌던 날의 기억을 지닌 한 나는 그 어떤 축축한 날도 웃으며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로펀에게 나는 그냥 한 명의 팬일 뿐이지만, 나에게 로펀은 내 삶의 일부이다.
로펀 덕분에 더 많이 즐겁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바쁘게 살게 되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나이 마흔 넘어 뒤늦게 만난 로펀이지만 난 그들 덕에 나이 먹지 않게 되었으니 앞으로 해보지 않았던 더 많은 것들을 로펀 덕에 경험하고 또 그 기록을 계속 적어나가고 싶다.
ps: 울 남편은 내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냥 옷이나 가방 등의 명품 좋아하고 그냥 평범한 주변 사람들 만나서
애들 키우고 회사 다니는 이야기나 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우리 동생들은 언니야~ 그냥 한 가지만 하면 안 되겄냐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