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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나는 어떤 냄새를 풍기는 사회적 동물일까?

by 묭롶

내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에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은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과자 선물 상자였다. 그 안에 어떤 종류의 과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어서 더 궁금했고 그래서 더 갖고 싶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런 선물을 해줄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슈퍼마켓에서 과자 선물상자를 볼 때면 혼자서 행복한 상상을 펼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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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영화 포스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어린 시절 과자 선물상자에 갖고 있던 그 설렘과 흥분을 그대로 느꼈다. 폭죽만 보고는 그 폭죽이 터져서 어떤 색으로 밤하늘을 물들일지 어떤 모양을 펼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 폭죽이 터지면 굉장히 멋진

풍경이 펼쳐질 거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생충>의 포스터는 바로 그러한 폭죽처럼 압축된 사건을 포스터 한 장에 담아내었다. 과연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에너지가 가득한 포스터 앞에서 나는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를 하루 먼저 본 직장동료의 스포일러를 경계하며 최대한 서둘러서 영화를 보러 갔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영화는 소문난 잔치답게 풍성한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내게 안겨주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의 즐거움을 위해

나 역시 영화의 줄거리와 관계된 내용을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얼얼함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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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생충>을 본 후 나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어쩌면

<설국열차>에서부터 시작된 질문의 답을 <기생충>에서 얻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국열차>에서의 계급투쟁이 육체적인 부딪힘 즉 유혈투쟁의 형태로 이뤄졌다면

<기생충>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투쟁을 다루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실현 가능한 일일까? 자본주의의 출연과 동시에 대두된 행복론 앞에서 그 어떤 이론가나 정치가 그리고 그 어떤 체제도 지금까지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대한민국의 성인은 선거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한 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가치는 일 인분이 아니다. 풍족한 식사를 매 끼니마다 당연하게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몸에서 소금이 나오도록 일을 하고도 일 인분을 가지고

온 가족이 나눠먹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지점에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최은영 작가의 [일 년]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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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제가 커다란 스노볼 위를 기어 다니는 달팽이 같아요.

스노볼 안에는 예쁜 집도 있고,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선물꾸러미도 있고,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저는 그걸 계속 바라보면서 들어가지는 못해요.

들어갈 방법도 없는 것 같고. 」 <일 년> 中 p332


사람은 빈부를 떠나 누구나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동물들과 다르게 털도 가죽도 없는 인간이 불쌍해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줬다고 하지만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을 훔쳐서라도 가지게 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존재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우연은 가진 자에게는 필연이 되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뻔히 눈에 보이는 데도 빠져나갈 수 없는 호리병에 빠진 개구리와 같다. 호리병 바닥에서 바깥도 빠져나갈 구멍도 보이는 개구리는 계속 뛰어오른다. 계속 뛰다가 죽을 때쯤 깨닫는다. 여길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좌절감이 여러 가지 사회병리적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매일 뉴스로 접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만드는 동안 막내 스텝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에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표준 근로시간과 급여를 준수했다는 사실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내내 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어쩌면

<기생충>에서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던 메시지를 봉 감독은 현실에서 몸소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기생충>을 보고 나니 벌써 봉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크리스마스처럼 설레며 기다릴 무언가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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