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졸라 #문학동네 #책 #소설 #루공마카르총서
집이 너무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나는 TV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이 부러웠다. 만약에 내가 인물이 빼어났다면 돈을 빨리 많이 벌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가난한 집에 키도 작고 내세울 것도 없는 맏이로 태어난 것일까 싶은 생각에 운명을 원망했었다. 발연기를 해도 외모 하나로 용서가 된다는 그들의 외모를 보면서 나는 외모도 큰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일찍이 깨닫게 되었다.
에밀 졸라가 지은 루공마카르 총서 중 <목로주점>의 세탁부 제르비즈와 알코올 중독자인 쿠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나나>의 주인공인 ‘나나’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거리를 헤매야 했던 나나는 열여섯의 나이로 아들 루이제를 낳았다. 거리의 여자로 살던 나나는 우연한 기회에 극장 지배인이자 연출가인 보르드나브의 눈에 띄게 되고 그가 연출한 작품 “금발의 비너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보르드나브는 주인공 ‘나나’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사람들에게 [ “진짜 음치죠.” ~ ”그 여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지요. 손발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도 몰라요.” ] p 11 라고 답했다. 실제로 극의 주인공인 나나는 희극의 주인공이라고 보기에는 전례에 없는 최악의 연기와 노래를 관객 앞에 선보였다.
[ ~이렇게 박자가 맞지 않는 엉터리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나팔을 불 듯 삑삑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제대로 서 있을 줄도 몰랐고,
두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온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그 몸짓이 점잖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웠다.
~ 그녀는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몸을 흔들어댔다.
~그녀는 자기가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녀는 그것에 괘념치 않고 얇은 의상 밑에 가려진
엉덩이를 불쑥 내밀어 둥그런 형태가 드러나게 한 뒤,
몸과 목을 뒤로 젖히고 두 팔을 벌렸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 p 26~28
<나폴레옹 3세>
극 중 시대 배경은 나폴레옹 3세와 공화파들이 프랑스를 지배했던 제2제정 시기로 극 중 궁의 시종장으로 일하는 뮈파 백작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과 부유한 유대계 독일인인 스타이너와 같은 자본가 계급 그리고 언론 계급을 대표하는 포슈리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계급의식을 공유하며 자신의 명예를 뽐냄과 동시에 뒤로는 자신들의 부를 늘릴 수 있는 이권사업을 모색하는데 열심이었다.
그들 공통의 목표는 바로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의 획득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 앞에 ‘나나’가 등장했다.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싶어 병이 난 어린아이처럼 파리뿐만 아니라 외국의 황태자까지도 ‘나나’를 갖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 ‘나나’는 오르지 못할 산이 아니라 재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욕심내어 볼만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 그녀의 저택에는 대장간의 불꽃같은 것이 존재했다.
거기서 끝없는 욕망이 불타고 있었다.
그녀의 하찮은 입김 한 번에 황금이 재로 변했고,
바람이 시시때때로 그것을 쓸어냈다.
그 누구도 이런 미친 듯한 낭비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 p520
흡사 게임에서 포션 한 개만 더 쓰면 최종 단계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국에는 ‘현질’(현금으로 아이템을 구입)을 하게 되는 사람들과 여기에서 조금만 더 돈을 투자하면 수십 배를 벌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에 대출을 하게 만드는 주식처럼 남자들은 ‘나나’를 자신이 독점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전 재산을 들이붓고 파산하거나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은 ‘나나’는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이 지겨웠다. 남자들이 물처럼 돈을 그녀에게 쏟아부었지만 그 돈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그녀는 매번 빚쟁이에게 빚 독촉을 받아야 했으며 빵장수에게 단 돈 133프랑을 주지 못해서 몸을 팔아야만 했다.
루공마카르 총서의 <제르미날>에서 마외의 딸 카트린이 장시간의 노동을 해서 동거인인 샤발을 먹여 살렸음에도 개처럼 얻어맞고 끝내 집에서 쫓겨났던 것처럼 ‘나나’는 자신이 순수하게 사랑을 바친 퐁탕을 위해 몸을 팔아 번 돈으로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생계를 꾸려 나갔지만 개처럼 두들겨 맞고 거리로 내몰렸다.
[ 나는 그들을 너무도 잘 알아요…….. 한 꺼풀 벗겨놓고 봐야 해요……
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아요!
존경은 끝났어요!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모두 더러운 놈들이고 한패 거리예요…… ] p450
퐁탕의 사랑을 받기를 원했던 나나의 욕망이 산산조각 났던 것처럼 <나나>에서 나나를 욕망했던 남자들의 욕망은 냄새를 맡고 달려든 쉬파리 들의 난입으로 금새 부패해버린 생선 꼴이 되었다.
이 책에서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나’에게 가장 많은 돈을 들였다는 이유로 나나에게 ‘여보’라고 불리고 하인들에게 ‘주인님’이라고 불렸지만 결국 나나를 독점하지 못한 채 파산해서 몰락해버린 뮈파 백작은 나나의 침실에서 장인인 슈아르 후작을 발견하고는 깊은 좌절의 수렁에 빠져 버렸다. 자본가인 스타이너는 동전 한 닢까지 나나에게 털어 넣은 후 파산했고, 푸카르몽은 미쳐서 물에 빠져 죽었으며 나나를 연모했던 조르주는 가위를 자기 가슴에 박고 그 여파로 죽었고 조르주의 형 필리프는 나나로 인해 공금 유용을 한 결과 영창에 갇혔다.
경마를 통해 자신이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겠다며 마권 사기를 계획한 방되브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말의 이름을 ‘나나’로 지었다. 그 말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을 함으로써 방되브르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줄 것 같았지만 사건의 전말이 발각되어 방되브르는 자신의 마구간에서 석유를 들이붓고 말들과 함께 타죽었다. 경마장에 혜성처럼 나타나 누구도 예측치 못했던 우승을 거뒀지만 주인인 방되브르와 함께 불에 타 죽은 말 ‘나나’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무수히 많은 남자들을 파멸과 죽음으로 이끌었다가 짧은 생을 살고 천연두로 그 아름다움이 모두 무참히 뭉개진 상태로 죽음을 맞은 인간 ‘나나’와 닮은꼴이다.
[ 뮈파 백작은 머리에 열이 나서 걸어가기로 했다.
그의 마음속 투쟁이 모두 끝났다.
새로운 생명의 물결이 사십 년 동안 쌓아온 그의 가치관과
신앙심을 쓸어버린 것이다.
~ 그는 나나에게 사로잡혔다고 느꼈다.
오늘 밤 그녀를 한 시간만이라도 소유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전 재산을 팔아치워도 좋을 것 같았다. ] p 208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고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나나>에서 돈과 명예를 모두 지녔던 뮈파 백작은 ‘나나’를 만난 후 ‘나나’에 대한 소유욕을 불태우게 되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얻고 싶었던 나나였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도 아니 그 보다 더한 무엇을 건다 해도 절대로 ‘나나’가 자신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곁에 있는 파랑새를 두고도 이를 찾지 못한 채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잃고 끝내 목숨을 잃고 물거품으로 사라졌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욕망)이 인생의 정답인 것처럼 그것을 얻기 위해 생애 전체를 그 앞에 제물로 바친 건 아닐까? <나나>를 읽으며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던 작중 인물들을 통해 나는 욕망하는 인간의 실체를 조금은 짐작해보게 된다. 어쩌면 에밀 졸라는 인간이라는 어려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문학적 실험으로 <루공마카르 총서>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나>에서 극중 나나가 펼치는 연기는 엉망이었지만 '나나'라는 한 사람의 인간을 통해 보여주는 문학적 실험극은 오래오래 그 명성을 잃지 않을 것 같다. 에밀 졸라의 다음 작품에서 인간의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 다음 작품의 독서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