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 수 없는 인간에 관한 悲歌!

#밤은부드러워라 #책 #소설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by 묭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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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p253






[ 아직 여유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서둘러 움직인다.

과거는, 대륙은, 뒤에 있다.

미래는 배의 측면에서 빛나는 입을 벌리고 있다.

너무도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떠들썩한 이 좁은 길이 현재다. ] p339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라>를 읽으며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본원적인 특징에 슬픔을 느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다. 다리가 늪에 빠져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순간에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두 팔을 뻗어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해가 지기 전까지 자신이 걸어서 돌아온 만큼의 땅을 얻기 위해 무리를 한 빠홈이 급사를 하고 겨우 자신이 누울 땅 밖에 얻지 못했던 것처럼 인간은 불이 없으면 프로메테우스를 꼬드겨서라도 신의 불을 훔쳐오게 만들고도 남을 존재이다.


피츠제럴드의 전작 <위대한 개츠비>에서 작중 인물 개츠비는 데이지로 표상되는 상류계급에 편입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제임스 게츠 대신 ‘제이 개츠비’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모조 보석으로 인해 제부인 스탠리의 의심을 사게 되고 그에게 폭행을 당하고 마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작중 인물 블랑시처럼 ‘제이 개츠비’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다 날개의 촛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은 이카루스처럼 추락하고 말았다

.




<밤은 부드러워라>



[ ~때로는 고통을 없애는 것이,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어

당장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 외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기쁨이나 기억을 없애는 것보다 더 힘들다.

~아픈 니콜과 건강한 니콜 사이에 갈라진 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제 직업인으로서의 자기 보호적 거리 두기와

그의 마음에 새로 생겨난 어떤 차가움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 p280~281




가난한 교구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장학금을 받아서 정신과 수련의가 된 딕은 정신과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신경증 환자 니콜을 만났다. 처음에 그의 정신과 동료였던 프란츠의 권유로 니콜의 ‘전이 치료’에 참여했던 딕은 니콜을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게 되었다.

니콜 역시 딕을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의사와 환자 관계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니콜의 언니 베이비 워런의 말처럼 ‘딕’은 니콜의 치료를 위해 워런가가 구매한 의사에 불과했다.





[ 술은 과거의 행복한 것들이 현재와 같은 시간에 존재하게 해주었다..

그것들이 지금도 계속되는 것 같았다.

술은 심지어 과거의 행복한 것들이 곧 다시 일어날 것처럼,

미래와 같은 시간에 존재하게도 해주었다. ] p173




딕은 워런가(니콜과 베이비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금력으로부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로즈메리를 만나 자신의 진심을 확인하게 된 이후 니콜과의 결혼생활에 회의감을 품게 되었다. 위태로워지는 니콜의 상태 회복을 위해 유럽의 여러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지만 그 또한 일시적일 뿐이어서 니콜의 언니 베이비 워런은 딕에게 니콜을 위한 병원을 짓는 것이 어떤지를 권유하게 되었다. 이에 정신과 동료 의사인 프란츠와 함께 상류층을 위한 정신병원을 설립한 딕은 그 자신이 애초에 그리고자 했던 모습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그는 갈수록 심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 들었다.



어찌 보면 딕은 피츠제럴드의 전작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딕)가 갖지 못했던 데이지(니콜)를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심지어 딕은 제임스 게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이름을 바꿨던 개츠비처럼 이름을 바꾸거나 자신의 실체를 감출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남북전쟁 당시 장군으로 활약했던 자신의 할아버지와 성실한 교구 목사이자 자상한 아버지였던 자신의 부친의 계급에 냉소를 표하는 니콜의 언니 베이비 워런의 무시 앞에서 자신이 상류층을 향한 편입 의지가 없이 순수하게 니콜을 사랑해서 그녀와 결혼을 한다는 그의 신념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신념이 워런가로 표상되는 귀족 자본주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된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갖지 못한 채 계속 추락하게 된다.






[ “어떤 때는 내 잘못이란 생각이 들어요-내가 당신을 망쳤어요.”

“그러니까 내가 망쳐진 거로군, 응?”

딕이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은 전에는 뭔가를 창조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 p436






밤은 부드러워라>를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환자와 결혼한 의사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겠다. 아픈 사람을 고치자고 찾아갔다가 오히려 의사가 병에 걸렸고 환자는 병이 나은 경우처럼 니콜은 딕과의 결혼생활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고 이로 인해 오히려 현실 의지(성욕과 정상생활에 대한 희망)를 획득하게 되었다.






[~어느 모로 보나 성장 초기의 유아적 관계에 해당되는

유대 관계를 맺게 되며 어린 시절의 모든 경험이

의사에게서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신경증적으로 장해된 적응 관계가

이제는 의사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대 관계는 흔히 너무도 강렬하여 결합이라는 말을 해도 좋을 것이다.

두 개의 화학물이 서로 결합하면 둘은 변화한다.

~의사가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그의 정신 건강도 손상될 수밖에 없다. ]

<인격과 전이> p175~176



<현자의 장미원: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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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장미원: 죽음>

20200607_132605.jpg <현자의 장미원: 새로운 탄생>






정신분석학자 융의 <인격과 전이>에 실린 ‘현자의 장미원’-전이의 연금술처럼 아버지에게 느낄 수 없었던 믿음직한 보호자로서의 딕(의사로서의)과의 결혼생활과 헤어짐을 통해 니콜은 토미와의 새로운 삶을 꾸밀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불쌍한 인물은 딕이 아닌가 싶다.


만약 딕이 니콜의 언니인 베이비 워런에게 자신의 신념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니콜과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정신과 개업의로 살다가 로즈메리를 만났다면 어쩌면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평생 자신만의 신념을 지켜나가며 존경받는 의사, 존경받는 아버지 그리고 사랑받는 남편으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을 떠나 그 누구도 스스로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지닌 나아짐을 향한 갈구를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불행으로 밀어 넣는 자승자박의 경우가 허다하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밤은 부드러워라>를 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행동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개연성이 나를 참 슬프게 한다. 왜냐면 나 또한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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