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책 #소설 #페터한트케 #긴이별을위한짧은편지 #문학동네

by 묭롶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p 11



이런 편지를 남기고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을 때 보통 남편들은 일단 내가 잘못한게 뭐가 있냐며 미친듯이 화를 내다가 그 뒤에는 아는 인맥을 모두 동원하여 아내를 미친듯이 찾아나선다. 아내를 찾을 때까지 분노와 좌절과 불안감이 뒤범벅된채 생활은 정상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그런데 소설 속 이 남자는 참 특이하다. 아내를 따라 미국에 왔지만 굳이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길을 지나가는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목적도 없이 그냥 이 호텔에서 다른 호텔로 이동을 하다가 뜬금없이 과거 하룻밤을 함께 보낸 클레어에게 전화를 해서 클레어의 아이 베네딕틴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 낯선 이곳에서 나는 아주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제퍼슨 가를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가는 동안 무의식중에 문득 유디트가

떠올랐지만 숨을 내쉬면서 몇 발짝 더 걷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녀에 대한 생각이 가셨다.

그렇지만 이내 의식 속에 황량함이 물려들더니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강한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올랐다.

흡사 살의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 p 21




소설은 지난 밤 꿈의 기억처럼 모호하기만 하다. 클레어를 만나기 전에 호텔을 전전할 때의 그는 자기자신의 마음의 상태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더운가 싶으면 춥고 배가 고픈가 싶어서 식당에 가면 식욕이 달아나고 없다. 어딘가 아픈 것 같기도 하지만 특별히 이상은 없고 잠은 자지만 계속 불안한 꿈만 이어진다. 소설 속 그의 행동에는 맥락이 없고 그래서 도대체 뭘 하고자 하는 것인지 읽는 내가 되묻고 싶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지막까지 책을 읽고 나서야 이 남자가 실은 아내 유디트를 잃게 되어서 마음이 아픈게 아니라 그도 유디트로 자신의 마음이 병이 들었기 때문에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사물들의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제껏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눈곱만치도 알지 못했다. ] p 121




날마다 ‘나’로 살지만 ‘나’는 ‘나’를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베네딕틴과의 대화에서 깨달은 그는

비로소 아내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소설 속 그처럼 우리는 마음이 아플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친구를 만나고 회사를 출근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드러내지 못하는 사이 속으로 곪아 들어간다.






[ 내 존재조차도 잊어버린 채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실측백나무가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내게로 점점 다가와 마침내 내 가슴속까지 파고 들어왔다.

~쾌감과 함께 나무이 움직임이 호흡 중추 기관의 기능을

넘겨받는 것을 감지했다.

실측백나무가 나를 자신의 품 안에서 흔들리게 했다.

~맥 빠지지만 기분 좋은 느긋함이 느껴졌다.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언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지 하는 모든

물음들이 명료해졌고 시간도 빨리 지나갔다. ] p 98





베네딕틴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된 그와 달리 집을 나간 유디트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상태로 그를 찾아와 그에게 테러를 가하고 실제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그를 향한 감정을 모두 소진한 후에야 유디트는 영화 감독 존 포드에게 “예”.~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p 204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나 자신을 좀더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단 말인가?”

“나 스스로 원하는 행동방식과 원하지 않는 행동방식이라는 것이

항상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해야만 비로소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 p 59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나에게 낯선 책이다. 그동안 읽어온 책들과는 다르게 순탄하게 읽히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덜커덕거렸다. 흡사 자신의 외모가 추하다는 생각에 거울 보는 것을 피하는 사람에게 거울을 들이민 것처럼 내가 그동안 의도적으로 피해왔던 무언가의 시선이 집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불어 읽는 도중에 문장이 내 의식을 뚫고 들어와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만들어내는 통에 실제로 읽는 데에도 평소의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책처럼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무수히 많은 ‘나’를 쉽게 읽히는 책처럼 그냥 건성건성 나라는 몸뚱이에 그대로 쓸어 담아 갈무리해버렸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집요한 시선의 정체는 '나'라는 통칭으로 갈무리해버린 무수히 많은 '나'는 아니었을까.





[ 그 미래 속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어.

매일같이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단 하루일지언정 얼른 더 나이가 들어서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 p 81





소설의 제목처럼 우리는 삶의 끝이라는 이별로 가는 과정 속에서 무수히 많은 ‘나’를 만나게 되는것은 아닐까. 그 과정에서 만나는 ‘나’들은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는 편지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 남자가 떠나버린 아내를 따라 미국에 갔지만 아내를 되찾는 대신 자기 자신을 되찾은 것처럼 우리의 삶은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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