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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Sep 03. 2022

홀로서기: 어떤 마음

Sep-18

지난여름, 겨우내 묵혀두었던 외로움들이 바닥이 보일 즈음에 유일한 소꿉친구와 술을 한잔했다. 친구는 나보다 더 어릴 때부터 바다 건너에서 생활을 해왔기에 아직까지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춘천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에 앉아, 한국과 멀어져 보냈던 시간들이 서로를 얼마나 멋지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외로움을 비워 낸 후였다. 건설적이었던 소회 속에서도 친구 놈은 오랜 쓸쓸함의 냄새를 맡은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잘 숨기지 못했고, 지난겨울은 내게 너무도 길었다. 가을이 오면 국화꽃이 피듯이, 겨울의 나는 그런 감정들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출국을 하루 앞둔 날에도 점심을 함께 먹을 때, 그는 내게 책 한 권을 건넸다. [홀로서기]. 서정윤 시인의 시집이었다. 제목을 보고 약간의 민망함과 큰 고마움에 파안대소를 하는 내게, 그는 표지를 넘겨 보라고 말해주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백지에는 오래 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낯익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 책을 너에게 선물하는 것은 겨우 책 한 권으로 어둡고 광활한 우주 속에서 혼자 유영하며 느끼는 너의 외로움이 위안을 얻을 거란 나의 어리석음과…” 

그리고 이렇게 끝났다. 

“... 외로운 바위 위에 서있으면서 파도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느끼는 자아의 확립을 상기시켜주는 문학의 즐거움을 담아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던 것이 폭염이 시작되기 직전, 6월 중순의 일이었다.


친구 놈의 바람대로 그 이후로는 쓸쓸함을 잘 느끼지 않았다. 원체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계절이기도 했고, 그렇게 심하게 앓을 때마다 삶의 필요조건에 대한 기대치를 한 단계씩 낮추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조언을 따라 또다시 지독하게 외로워지거든 읽을 책을 한 권 가지고 오기도 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 책의 절정에서 화자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외로워해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지구란 행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동력으로 자전하는 것이냐고. 읽고 나서 적막의 바다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마음이 나를 위로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시간은 흘러 여름은 지나갔다. 창문 밖에는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가을비가 내리는 밤이 되었기에, 나는 옛사람이 되어 백지에 답시를 적어보게 되었다(*).

“지난해 다녀간 외로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외롭지 않은 날들에도 나는 가끔씩 너의 장황하고 빼곡한 한 문장 짜리 편지를 찾곤 했다. 훗날의 나를 위로하는 것이 있다면, 잘 쓰인 문학 작품이나 홀로 서야 한다고 다짐하는 시들이 아닌 너의 삐뚤빼뚤한 어리석음 일 것이다.”     

그렇게 적고는 맺음말을 찾지 못해 편지를 띄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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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유(臥遊) - 안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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