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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Feb 22. 2020

포드V페라리: 새해에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계획은 없다


새해가 되면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던 칼럼을 생각합니다. 너무도 재미있는 글이니 링크를 클릭해 잠시 읽고 돌아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 가운데서도 마크 타이슨에 관한 부분을 기억합니다. 타이슨의 명언: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도 생각하지만 그보다 그의 잽에 맞으면 얼마나 아플지를 상상해봅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아닙니다만, 대화로 갈등을 해결할 줄 몰랐던 십 대 초반, 친구와 사소한 일로 주먹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키가 작고 몸이 단단했던 친구가 오른팔을 휘둘렀을 때, 저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내가 싸움에 전혀 소질이 없다는 것이었고, 둘은 주먹을 맞으면 별이 보인다는 말이 결코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타이슨의 주먹에 맞았더라면 대낮에도 유성 관측회를 열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행히도 운이 정말로 (안)좋지 않은 이상 우리가 타이슨의 주먹을 맞을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한숨을 돌리고 타이슨과 복싱 경기로 돌아가 봅시다. 스스로 전도연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칼럼니스트는 계획을 갖고 링에 올라서는 일과 신년 계획을 갖고 한 해를 살아가는 일을 비교합니다. 저도 이 둘의 유사성에 집중해 봅니다. 삶은 때때로 너무도 지독하기에 마치 링에 올라 누군가와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링에 이름은 수능이 되기도 하고 취업이 되기도 하며 결혼이 될 때도 있습니다. 링에 올라선 이들은 어떠한 열기에 사로잡힙니다. 경기가 끝나면 얼굴이 부어오를 테니 오이 팩을 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링 위에서는 누구나 저마다의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왜' 링에 오르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정확한 이유와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이의 도전정신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아버지의 부적절한 도움을 받는 등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백만 유튜버가 되기 위한 도전이든, 2천 원짜리 이모티콘을 위한 도전이든 응원의 여지는 분명히 있을 듯합니다. 다만 별생각 없이 헌 책방에서 사법고시 참고서를 구매해 사법고시라는 링에 올라버리면 곤란합니다. 사법시험은 이미 몇 년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별 이유 없이 정당에 가입한 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라는 링에 올라버리면 조금 위험합니다. 집안 재산을 거덜 낸다는 이유로 엄동설한에 팬티 바람으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입을 삐쭉 내민 채 찡그리고 있어야만 하는가...' 출처 - Daum 영화


[포드 V 페라리]라는 영화를 보는 저의 생각도 이와 비슷합니다. 르망 24시라는 링에 오른 선수들의 대결은 박진감 넘칩니다. 특히나 영화의 음향과 촬영 기술의 기교는 예술의 경지(state-of-the-art)에 이르렀기에 영화의 러닝타임이 얼마나 긴 지 체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그들이 왜 링에 올랐는지는, 그들의 감정선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포드가 페라리를 싫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포드도, 페라리도 만나본 적 없는 것 같은 두 스포츠카 레이서는 서로를 향해 콧방귀를 뀌는 것인가요. 르망을 우승한다고 해서 크게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는 자동차 업체 사장은 왜 다른 이의 멱살을 잡아가며 경기에 흥분하는 것인가요. 링 위에서는 모두가 최선을 다하기에, 나에게 주먹을 뻗는 이에게 적개심을 느끼는 것은 동물적 본능일 테지만, 서로는 사실 링에서 만날 필요가 없는 상대였을지도 모릅니다. 복숭아꽃이 핀 동산에서 만났더라면 그들은 의형제의 연을 맺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요.


그러니 새해에는 함부로 링에 오르는 일을 조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이름도 모르겠는 링 위에 올리려 할 때면, 링 위에서 쓰려고 연습해 두었던 로우킥을 그에게 사용해봅시다. 이미 경기가 시작된 줄 알았다고 말하며 사과하는 정중함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이유 없이 링 위에서 힘을 빼기보다는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며 에너지를 비축해둡시다. 멋진 경기들에만 참가하더라도 삶은 충분히 즐거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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