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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Feb 14. 2022

Love Poem - 어느 무종교인의 기도

20-Sep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직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인턴을 해본 직종이라 이직을 원하는 마음에는 확신이 있었다. 일이 아주 바쁘지 않은 틈을 타 원서를 작성했고, 몇 달 후 합격 통보를 들었다.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다행히 학기는 시작했다. 

축하와 작별 그리고 환영의 인사들을 거쳐 나는 다시 무적()의 도전자 신분으로 돌아왔다. 가까이는 여름 인턴 채용이, 멀게는 정규직 채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고백하건데 석/박사생의 채용 과정은 학부생의 그것보다 더 수월할거라 어림 짐작하고 있었다. 구직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었으며, 큰 회사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당연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호기로운 태도에 금이 가기까지는 지원 서류을 접수하고 채 2주도 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지원했던 두 회사에서 면접 제의조차 받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영혼없는 위로의 말이 담긴 이메일을 보며 나는 망각이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다시 이 자리에 왔던가. 학부시절 가장 씁쓸했던 기억들이 아직까지 생생했더라면 이렇게 부담없이 도전하지는 못했으리라.  


          이 자리에 두 번째 서서야 도전은 자기 의심의 연속임을 이해한다. 시험처럼 표준화된 항목에 대한 도전은 양반이다. 눈에 보이는 지표들을 통해 나의 진행 과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고, 당락을 가르는 수치화된 기준이 없다면, 스스로를 비춰보는 수단은 ‘최선’과 같은 모호한 단어들이 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일이 무릇 그렇듯, 무언가를 이루는 일은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운을 필요로 하기에, 어떠한 노력들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믿었던 과거의 나는 점점 작아져 지금에 도착한다. 


          오랫동안 걸어왔음에도 아직 남은 거리가 아득하게 멀어보이는 날이면,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다음 속삭이듯 기도한다. 기도는 주로 이렇게 시작한다. “제가 작은 성공에 자만하게 하지 않게 해주시고, 하나의 실패에 낙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겸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나의 기도는 전능한 누군가를 향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시절에도 신에게 스스로를 맡길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같은 마음에서, 나는 앞으로도 신을 찾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나를 떠난 기도는 활자 그대로 일기장에 적힌다. 간절했던 마음들은 어디엔가 기록해 놓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의 나는 지난 일기들을 뒤적이다 나의 소망을 발견할 것이다. 어린 마음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다가도 한편으로는 애틋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기도의 수취인은 어쩌면 미래의 나일지도 모른다.     
  

          짧은 기도를 하고 나면 알지 못하는 무형의 기운을 얻는다. 간절한 마음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지난 날의 일기를 읽는 나의 응답인지 알 수 없다. 어찌되었건 나는 조용한 기도의 힘으로 하루를 또 지내본다. 나의 기도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니 무엇이든 하기 위해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지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럼 저는 계속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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