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May
원제: Before Sunrise, Sunset and Midnight : 시간을 여행해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출처] Before Sunrise, Sunset and Midnight: 시간을 여행해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꼬부랑말을 쓰는 나라에서도 한국어 책을 주로 읽는 독서모임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임은 매달 서로 다른 발제자가 책을 정한 뒤 대여섯 가지 질문을 공유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읽고 만나 책에 대한 소감과 질문에 대한 대답들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책의 종류도 질문의 경중에도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꾸려 모이면 저는 장소와 다과를 준비하면 됩니다.
모임은 기가 막히게 즐겁습니다. 나와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함을 알았을 때 서로 눈을 맞추며 눈을 끄덕이는 재미가 있습니다. 자주 눈을 마주치게 되는 상대와는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이들에게서는 때때로 생각이 바뀌는 즐거움을 얻고는 합니다. 모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역시 나와는 다른 생각 때문에 크게 놀랐던 순간이었습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함께 읽고, ‘나에게서 상실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상실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일지’ 물었을 때, 자신에게서 상실된 것들에도 있음에도 과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던 참가자가 있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앞으로의 삶이 항상 더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저와는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그 순간에는 까마득한 어른을 보는 것 같다고 느꼈었습니다. 이것이 과거를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되었던 까닭입니다.
이제는 그 젊은 현인의 말을 자신 있게 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사실 저에게는 아직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가끔은 2016년의 2월 춘천 CGV에 앉아 [캐롤]을 기다리던 때로 돌아가면 어떨지 생각하고, 2018년 1월에 대학교 소극장에서 [Shape of the Water]를 처음 보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멋진 영화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몇 년을 보지 않고 아껴두었던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를 보고, 첫 영화를 보기 전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지 또한 생각해보았습니다.
비포 3부작이 여러 사랑 영화들과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시간의 함수로서의 사랑(Love as a function of time)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앞둔, 사랑을 지나버린, 그리고 사랑의 영원함을 묻는 두 사람과 그 둘의 대화로 이루어진 영화에서 사랑은 지향점으로, 삶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여정으로 다가옵니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 개개인이 그리는 함수의 형태를 묻습니다.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 당신은 주어진 순간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어떠한 선택들을 할 수 있나요?
[Before Sunrise]는 서로를 우연히 발견해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한 이십 대 초반의 두 연인을 그립니다. 아마도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녹슬지 않았을 시기일 겁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면, 내게 주어진 상황이 어떻든 그대에게 같이 기차에서 내리자고 말할 수 있을지. 나는 그러자고 말하는 그대를 따라 내릴 수 있는지.
[Before Sunset]은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서로의 감정을 다시 확인한 두 사람은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떠나보낸 후 점선이었던 사랑의 곡선을 실선으로 바꾸어냅니다. 지나버린 듯한 사랑에 다시 한번 닿을 수 있다면,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Before Midnight]은 다시 한번 9년이 흘러 부부가 된 두 사람을 조명합니다. 이제 두 사람에게서 삶과 사랑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랑의 약속들은 두 사람의 삶에 비가역적인 변화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사랑의 영속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은 쌓여온 감정들 때문에 크게 싸우다가도, 이내 서로에게 화해의 손길 내밉니다. 미운 감정을 쏟아낸 상대에게도 미안하다 말하며 내일을 그려갈 수 있을까요. 사랑은 영속될 수 있는 것인가요.
영화 속 제시와 셀린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화 밖에서는 관객들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저 역시도 운명의 상대를 마주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던 때로부터 5년의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스물셋과 서른둘의 중간지점에서,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롤러코스터처럼 가파르게 오르는 곡선을 그릴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되려, 어떤 사람이 되었든 내가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Before Midnight]이 유난히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입니다. 다만 지나간 사람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할 수 없습니다. 기차에서 지나쳐 버린 사람이 제시/셀린이었는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Before Midnight]에서 자정에 가장 가까운 시각, 제시는 직전의 싸움 때문에 감정이 상해 있는 셀린에게 말합니다. 사실 나는 타임머신을 탄 시간 여행자고, 82세의 당신이 나를 여기로 보냈다고.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온 그는 당신에게 너무도 미안해하고 있다고. 이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를 읊는 제시가 어이가 없어 피식 웃다가도, 위 대사가 세번째 영화에서 나온 대화들 중 가장 로맨틱한 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82살의 내가 시간을 여행해 27살의 나로 돌아간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스물여덟의 봄에 누군가를 만난다면 기차 창문을 부수고 뛰어내릴 준비를 하라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그냥 가장 확실한 한 가지 말만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스물두 살에 보았던 어떤 영화는 스물일곱 살이 되어도 잊지 못할 거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