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Jul
끈적한 여름 바람이 몸에 슬쩍 닿을 때면 저는 홀린 듯 바다로 향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 몇 년의 여름 동안 빠지지 않고 바다를 다녀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 책을 읽다 잠들던 두어 번의 휴가가 제게 멋진 기억들을 선사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도 여름휴가 하면 백사장에 지는 석양과 밀려오는 파도의 소리들을 생각합니다.
큰 호수 변에 자리한 도시에서는 호수가 바다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여름 해가 한 풀 꺾인 다섯시 반쯤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로 향하면 이미 많은 이들이 물가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호숫가는 바닷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갈매기들은 사람들이 던져준 과자를 받아먹으러 저공비행을 하고, 바지만 걸친 남자들과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손을 잡고 느긋하게 걷는 노부부 뒤로, 하드를 잔뜩 담은 수레를 모는 아저씨가 조그마한 종을 울려가며 아이스크림을 팝니다. 꼬마들이 먹고 난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자 호숫가를 순찰하는 경찰이 ‘너희들은 너무 깜찍하다며' 박수를 쳐줍니다. 잔잔한 호수만큼이나 평온한 오후입니다. 핸드폰을 들어 어느 곳에도 업로드하지 않을 호수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끈적한 바다 바람을 맞으면 찐득한 여름 노래를 듣고 싶어집니다. 청량하고 산뜻하기보단 어느덧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노래들 말입니다. [지난여름의 속삭임]에 관한 글이 생각나 Anri의 노래를 듣다가 Jazzyfact의 [하루종일]을 틀어 놓고 호수를 바라봅니다. [하루종일]은 Anri의 곡을 샘플링해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바다에 몸을 반쯤 담가놓고 하루 종일 파도 소리를 듣고 싶어집니다. 바다와 하늘을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보고 있자면, 곧 시간의 흐름도 잃어버립니다.
호수가 도시의 동쪽에 위치한 까닭에 석양이 지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내 앞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할 때쯤이 되어서야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호숫가에서 두어 시간을 보낸 나의 마음이, 큰마음 먹고 동남아시아로 떠나 해변에서 보냈던 시간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집에 가까워 질 수록 이 또한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낮의 태양을 대신하는 도시의 불빛을 보며 맥주를 한 병 마십니다.
[출처] 하루종일: This Summer's Whis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