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25
옷차림이 점점 두꺼워지는 날씨가 찾아오면 가끔씩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들이 찾은 올해의 지혜는 무엇인지. 타인이 얻은 지혜를 묻는 마음은 미지의 세계가 궁금한 어린이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자전거는 어떻게 타는 건가요 - 하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있을까?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알지만, 나는 깨금발을 하고서라도 그 풍경들을 미리 보고 싶다. 가깝고 먼 미래, 비슷한 경험 가운데 친구의 지혜가 마음을 울려오게 되면, 나는 그 당시의 나와, 친구와, 지금의 나를 돌아볼 테다. 이 시간여행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즐거움이 있다.
올 한 해, 내가 가장 큰 위로를 주었던 깨달음은 바로 '힘들기만 한 1년은 없다'였다. 한 해 동안에는 그 해에 할당된 즐거움이 있음을 기억하라. 지난 일기들을 한 발자국 멀리서 읽어보다 발견한 지혜다. 힘들게, 또는 즐겁게만 기억되던 지난날들에도 나름의 희로애락들이 있었던 것. 이 지혜는 쌀쌀한 계절을 지나 보내는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힘들기만 한 1년은 없다'는 말은 곧 '즐겁기만 한 한 해도 없다'가 되기도 한다. 한 해 동안에는 한 해 분의 고난 또한 있다는 것. '...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구절을 떠올린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련들이 있고,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일들이 매해 우리를 찾아온다. 지나고 나면 별 일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런 소회는 어느 시점에서는 굉장한 사치일 뿐이다.
즐거움뿐인 한 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 인가. 올해 내게 두 번째로 큰 울림을 주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은 바로 '지금껏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수양하게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미워함으로 내 속이 곪는 것 같아 감정의 보자기를 여몄던 금년의 여름처럼. 나는 그동안의 비바람과 폭풍우들을 '그렇다면'의 자세로 헤쳐왔던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 매 해 새로운 힘듦과 (닮은) 즐거움들이 찾아옴을 막지 못한다면, 그저 작은 즐거움을 크게 쓰고 큰 힘듦은 잊으려 노력하겠다.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새 해를 기다리다가, 내 방 창가에서 조금 더 큰 지혜를 발견한다. 친한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주고 간 휴지 세트 포장지에 손난로처럼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새 집에서 좋은 일만 가득하길!!" 한 해에는 그 해 분량의 힘듦이 있음을 이야기하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줄 것을 안다. "그래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친구는 웃으며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 행복하렴! 행복을 빌어줄 때 이러쿵저러쿵 따질 필요가 있을까. 즐거움은 크게 쓰고 힘듦은 넘겨버리겠다는 태도보다는 어찌 되었건 즐거운 일들이 있길 바람이 새해에 더 어울리는 마음일 것이다. 즐겁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