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는 것
겨울의 끝자락, 찬기가 온몸을 휘감던 날.
열 번째 시험관 시술을 마친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다.
이제 더는 미련 없다. 여기서 멈추자.
처음으로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썼다.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먹고, 다시 잠들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나를 돌보았다.
늦잠을 자고, 천천히 먹고, 다시 잠들었다.
피검사 날.
아홉 번의 실패 끝에 바꾼 담당 의사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다.
아홉 번이나 함께했던 여의사를 떠올리니 미안함이 스쳤다.
내가 바꾸지 않는 한, 그분은 묵묵히 내 실패를 함께 견뎌야 했을 것이다.
검사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병원 근처 두부 전문점에서 청국장을 시켰다.
사골국에 지쳐 있던 내 혀끝에 구수한 맛이 스며들었다.
밥 한 톨도 남김없이 싹 비워냈다.
돌아오는 길,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40분을 걸었다.
도심의 풍경이 낯설 만큼 다정했다.
나만 빼고도 세상은 이렇게 잘 돌아가는데…
이제는 나도 이 삶 속으로 돌아가자.
집안의 온기가 한기를 밀어내자 식곤증이 몰려왔다.
침대에 쓰러져 두 시간은 잤을까.
결과를 들을 시간이 됐다.
기대했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내가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굳이 안 들어도 되는데… 그래도 확인해야지.’
수화기를 들자 심장이 요동쳤다.
뚜—우, 뚜—우.
그저 신호음일 뿐인데, 왜 그토록 두근거렸을까.
“임신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담담한 목소리에서 뜻밖의 말을 듣는 순간,
멍하니 오른손톱으로 왼손등을 꼬집었다.
아프다. 현실이네.
세상이 흑백에서 색을 되찾았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전부 본인 덕분입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도 한동안 멍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는데,
가슴속 감정은 복잡하게 소용돌이쳤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 됐어. 나 됐다고!”
숨이 가빠 옥타브가 하늘로 솟구쳤다.
“뭐? 됐다고…”
남편의 메마른 대답.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멈칫했다.
놀랐구나. 그래, 직접 전해야겠다.
“지금 병원으로 갈게.”
“아니야. 오지 마. 피곤할 텐데 집에서 쉬어.”
전화가 끊겼다.
하지만 내 발끝은 이미 병원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