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92화. 빠져나올 수 없는 늪

이제 나는…

by 나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동안 망설였다.

가지 말까?

설마… 기쁘지 않은 건가?

아니야. 나만큼 놀라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남편의 뜻밖의 반응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임신인데, 왜 이렇게 담담한 걸까.

나도 너무 놀라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지만,

이 벅찬 소식을 남편과 얼굴을 맞대고 나누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직접, 눈을 보며.


나는 결국 택시를 잡아탔다.

병원 복도 끝, 휠체어에 앉은 남편이 보였다.

잿빛 하늘빛이 창문을 타고 스며들어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내가 보고 온 하늘은 분명 맑고 쾌청했는데,

병원 안 공기만 유난히 흐려 보였다.


또각, 또각—

내 발자국 소리에 남편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눈동자는 공허했다.

반가움도 놀람도, 그 어떤 빛도 없었다.

휠체어 팔걸이를 쥔 손가락만 하얗게 굳어 있었다.

“왔구나.”

단 두 음절. 기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결은 한 톨도 없었다.


공기만큼이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괜히 밝게 톤을 높였다.

“하이~ 방금 전화했을 때 있잖아, 의사 선생님이 정말 덤덤하게…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랐지 뭐야.”

내 말이 길어질수록 남편의 표정은 더 굳어갔다.

그의 눈빛엔 단 한 줄기 기쁨도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멈췄다.

더 이어갈 이야기가 없다는 걸,

그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 그만 갈게. 피곤하다.”

내 말끝이 병원 복도의 차가운 바닥을 따라 미끄러지듯 퍼져갔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남편을 남겨둔 채, 나는 차가운 복도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병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차 안에서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몰라, 몰라, 몰라…


집에 도착하니,

아까까지만 해도 희망으로 가득하던 공기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소원이 이뤄진 오늘,

이 복잡한 감정은 나를 다시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린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발목이 빠져든다.


날 옥죄던 이 늪을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은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슬픈 날.

불임 판정을 받던 그날 다음으로, 이토록 괴로운 날이 또 있을 줄이야.


무정한 삶이여—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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