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98. 시험관 시술 10회, 임신 (6)

숨 막히는 추석, 그리고 귀향길

by 나은

임신하고 맞은 첫 명절은 추석이었다.

남편은 내 몸을 핑계 삼아 내려가지 말자고 했다.

평소 집안일이라면 이유 불문 달려가던 사람이었다.

임신 초 그 여자와 주고받은 메일이 들킨 뒤, 사과 한마디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던 그는 어쩌면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약점을 쥔 듯해 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상처를 들쑤실 용기가 없어 그냥 물 흐르듯 지냈다.



굶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태교에 힘썼지만, 반쪽짜리 행복은 평안을 주지 못했다.

남편은 더 모질어졌다.



하루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말을 놓은 채 안방에 누워 있었는데, 부엌에서 라면 끓는 소리가 났다.

냄새가 코끝을 찌르자 화해라도 하고 싶어 식탁으로 갔다.

젓가락을 들자 남편은 냄비를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기며 퉤퉤, 침을 뱉었다.

“먹지 마.” 순간, 시간도 나도 얼어붙었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젓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덮었다.



임신하면 먹고 싶은 것을 다 사다 주는 드라마 속 남편은 세상 어디에 있는 걸까.

찹쌀떡을 외치는 상인을 쫓아가던 남자, 한겨울 딸기를 구해오던 남자… 그런 장면은 내게 없었다.

어른들은 “임신 중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 아기가 눈이 짝짝이가 된다” 말했는데, 아이는 실제로 사시로 태어났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남편을 향한 원망은 없다.

그저 그때의 내가 안쓰러울 뿐이다.

“임신도 못하는 주제에…” 그 한마디를 왜 그렇게 담아 두었을까.

한쪽 귀로 흘렸다면 내가 쓰레기통이 되지 않았을 텐데.



몸으로 다투는 일은 없었지만 남편은 내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임산부로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은 어느 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임신 사실을 양가에 비밀로 하자고 했다.



그토록 바라던 임신을, 나만 알고 기뻐해야 했다.

친정은 여전히 내 불임도, 열 번의 시험관 시술도 모른다.

원래 서로의 사정을 깊이 캐묻지 않는 집안이기도 하고, 나 역시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스스로 감내하려 해 왔다.

시댁은 다를 것이다.

전화만 하면 한 시간은 기본인 사람들, 시험관 시술에 든 천만 원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나는 추석에 내려가고 싶었다.

시댁과 친정은 차로 불과 스무 분. 임산부로서 한 번쯤 응원과 지지를 받고 싶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큼은 사람들에게 축복받고 싶었다.



그래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귀향길을 택했다.

차가 막히고, 화장실도 어려울 걸 알면서도.

'저 임신했어요. 다들 축하해 주세요.'

죽을 것 같은 외로움을 이겨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길을 나섰다.






다음 시리즈 예고


〈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


불임 시리즈는 100화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기록이 시작됩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여정,

이혼 소송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재판의 현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과 계획까지—모두 사실을 기반으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힘든 길이지만,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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