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99화 시험관 시술 10회, 임신 (7)

임산부의 자리, 반쪽짜리 기쁨

by 나은

추석 귀향길은 생각보다 길고 힘들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을 뿐인데도 방광이 눌려 화장실 생각뿐이었고, 휴게소 화장실 줄은 끝도 없었다.

임산부 시늉을 해보고 싶었지만 밀려드는 인파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다시 차에 올랐다.


밤늦게 도착한 시댁.

나는 처음으로 시어머니께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 저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내가 어색했듯 어머님과 남편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어머님은 서둘러 밥상을 차려주셨다.

사실 멀미가 심해 물조차 삼키기 힘들었지만, 한 번쯤 임산부로서 먹고 싶다고 조르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남편은 묵묵부답.

기다리다 지친 내가 불쑥 말했다.

“어머니, 저… 임신했어요.”


놀란 어머님은 두 손을 꼭 잡으며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아이고, 정말이냐? 이제 됐다. 이제야 됐다.”

나는 그저 축하 한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떤 보상도, 이벤트도 아닌 그 한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웠던 임신.

어머님의 진심에 눈물이 쏟아졌다.

결혼 6년 만에 들려주는 소식이라, 기쁨보다 먼저 마음 한편이 괜스레 죄송스러웠다.



추석 당일이 지나 친정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시누이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야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떠났다. 시댁에서 불쑥 임신 소식을 밝힌 뒤 망연자실하던 남편이 친정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친정에서도 내가 직접 임신 사실을 말했다.

내가 혼자 책임져야 할 일처럼 느껴졌지만, 가족들은 걱정을 내려놓은 듯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겸연쩍어하는 남편의 얼굴에는 끝까지 아이를 지켜내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그림자가 비쳤다.

영락없는 ‘쫄보’의 모습이었다.


밀린 숙제를 제출한 것처럼 서울로 돌아오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반쪽짜리 임산부로서의 일상은 여전히 우울을 걷어내지 못했다.

임산부 티라도 내보면 “너만 임신했냐, 유난 떤다”는 핀잔이 돌아왔다.

몇 번 흉내를 내다 이마저도 사라졌다.

배도 크게 불지 않았고 체중도 거의 늘지 않았다.

태동도 희미했다.

'아이가 알아서 크겠지'라는 막연함 속에서 내 산전우울증은 점점 깊어졌다.


너무 미안했다.

임신만 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끝없는 나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미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목숨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며 임신했건만, 결국 아이를 외면했다.


내 기분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우울증이 뭐 그리 유세라고—.


아이가 내게 휘두르는 어떤 고통도, 어떤 횡포도 나는 감수해야 한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저지른 과오를 갚아가고 있다.

어떤 것으로도 속죄할 수 없는 죄를.




다음 시리즈 예고


〈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


불임 시리즈는 100화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기록이 시작됩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여정,

이혼 소송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재판의 현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과 계획까지—모두 사실을 기반으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힘든 길이지만,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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