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도전, 첫울음
가는 해를 아쉬워하며 새해를 맞는 도시의 불빛이 TV 화면에 번쩍였다.
내 안에도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시간.
열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찾아온 첫 임신, 그리고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산전 우울증이 짙게 드리워져, 출산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마음은 여전히 멀었다.”
그러나 뱃속의 아이가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었다.
밤, 남편은 연말 모임에 휩쓸려 있었다.
임신 막달이지만 티 나지 않는 아랫배.
내가 임산부라고 알아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흔들리는 나를 위해 조카에게 내어준 자리를 양보했더니, 화를 내던 낯선 이도 내가 임산부인 줄 몰랐다.
충분히 먹이지도, 충분히 쓰다듬어 주지도 못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출산 병원 산후조리원 등록을 위해 새벽녘 번호표를 받으러 간 일뿐이었다.
고령 산모라는 이유로 기형아 재검을 권유받았지만,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말과 “혹시 기형아면 안 낳을 거냐”는 남편의 으름장에 검사를 포기했다.
내 인생의 꼬임은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
걱정할 여유도 없었다.
예정일을 보름 남짓 남긴 어느 저녁, 배가 살살 아팠다.
남편은 술에 취해 들어왔다.
“별일 없을 거야.” 그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병원에 전화를 걸자 간호사는 “출산 가방을 챙겨 빨리 오라”고 했다.
술에 취한 남편은 “내일 가도 된다”며 못마땅해했지만, 몸은 자꾸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결국 택시를 탔지만 출산 가방은 두고 갔다.
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는 곧바로 입원을 권했다.
출산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술기운에 병원 의자에 드러눕고 싶어 하던 남편보다, 경황없는 내가 더 침착했다.
자정을 넘기자 담당의는 나타나지 않았고, 간호사들이 수시로 자궁문을 확인했다.
옆 방에서 터져 나오는 산모들의 신음이 불안을 더 키웠다.
구토가 치밀어 올라왔고, 남편은 토사물을 치우지 않고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 냄새가 나를 더 흔들었다.
“집에 가서 자고 와. 애 낳으면 연락할게. 출산 가방도 가져와야 하잖아.”
“그럼, 금방 다녀올게.”
또다시 혼자였다.
호흡법으로 진통을 버티며 새벽을 견뎠다.
담당의는 한참 후에야 수많은 인턴들과 함께 나타났다.
나의 몸을 두고 설명하는데 ‘내가 실험 대상인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출산을 앞둔 몸은 항변조차 힘들었다.
불안이 높아지면 판단이 흐려진다.
출산 중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입을 다물었다.
열두 시간의 진통 끝, 정오 무렵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힘이 빠져 흡입기로 머리를 잡아당긴 듯했다.
응애― 첫울음이 터졌다.
간호사가 아이를 내 겨드랑이 옆에 살짝 눕혀주었지만, 온몸의 진이 빠져 오래 안아주지 못했다.
회복실로 이동하자 미친 듯이 몰려오는 갈증.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옆 침대 보호자에게 물 한 잔을 청했다.
그 물 한 모금이 생명의 시작처럼 온몸에 스며들었다.
쭈글쭈글 작은 눈매와 겨우 그어진 눈의 선,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콧날, 살며시 다문 촉촉한 입술.
‘내가 너의 엄마야. 반갑다, 콩이야.’
그 순간, 나는 분명히 알았다.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어렵게 찾아온 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적을 품에 안았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드렸다.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어떤 길을 걷든, 오늘의 기적을 잊지 않겠습니다.
제 남은 인생을 사랑으로 바치며, 아이가 세상에서 빛을 내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잘 키우겠습니다.'
〈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
불임 시리즈는 100화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기록이 시작됩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여정,
이혼 소송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재판의 현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과 계획까지—모두 사실을 기반으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힘든 길이지만,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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