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2화. 남편의 교통사고

코끼리가 비스킷을 밟다

by 나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

새 지역, 새 집, 새 가구…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다.


토요일, 시댁 식구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가 잡혀 있었다.

8남매 중 남편의 6·7·8번째 형제들이 모여 포천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요란하게 울린 응급실 전화

혹시 아는가?

평소와 다른 벨소리의 요란함을, 다급하게 울려대는 그 요동을…


“여기 병원인데요. 환자분이 지금 응급실에 계십니다. 빨리 와주셔야겠어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기계적으로 담담했다.

그런데 그 담담함이 이상하게 더 불안하게 들렸다.

결혼 한 달밖에 안 된 새댁에게 그런 전화는 너무도 낯설고 불길했다.



급히 택시를 잡아탔지만 토요일 오후 강남대로는 미친 듯이 밀려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내 표정은 이미 모든 걸 드러내고 있었나 보다.

기사님이 백미러 너머로 물었다.


“누가 아파서 병문안 가세요?”


굳이 대답할 이유는 없었지만, 속을 털어내듯 입이 먼저 열렸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연락이 와서 가는 길이에요.”


그는 태연히 대답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병원에서 오라 한 거 보니 큰일은 아닐 거예요. 의사들이 워낙 호들갑을 떨어서 그래요. 자기들 책임 안 지려고.”


분명 위로였지만, 오히려 간호사의 차가운 말투가 떠올라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큰일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내리 꽂혔다.






코끼리가 비스킷을 밟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미닫이 문이 한 뼘 열린 틈 사이로 몸이 저절로 들어섰다.


그곳에 반쯤 누운 채 고개를 뻣뻣이 든 남편이 있었다.

의사와 대화를 나누며 다리를 소독받고 있었다.

눈을 뜨고, 말을 하고, 손짓까지 하는 걸 보니 기사님 말처럼 큰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안도했다.


그러나 의사는 나를 따로 불렀다.

“환자는 지금 바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께서 세미나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렵고,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담담하게 전하던 간호사의 말이 사실이었다.

남편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연락을 한 뒤, 우리는 구급차로 또 옮겨야 했다.

목적지는 포스코 사거리의 화상 전문 병원.

들어서는 순간,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뇌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토요일 늦은 오후라 의사는 퇴근한 상태였고, 우리는 창고 같은 방에서 하염없이 대기했다.

다리 수술을 앞둔 환자를 화상병원 창고에 방치하다니… 화가 치밀었지만, 칼자루를 쥔 건 결국 의사였다.

그의 손끝에 남편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마침내 의사가 나타나 말했다.

“지금 상태를 쉽게 설명드리면, 코끼리가 비스킷을 밟아놓은 상황입니다. 최대한 붙여보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코끼리가 비스킷을 밟아놓은 다리라니….’

충격적인 비유에 얼떨떨한데, 불현듯 구급차 안에서 남편이 내 손을 잡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어떤 상황이 와도 날 버리면 안 된다.”


그때는 생뚱맞아 피식 웃어넘겼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남편은 이미 자신의 상태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병의 시작, 그리고 나약한 이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리를 절단한다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떠나는 경우가 있겠는가.

참 우스운 발상이다.


그때 알았다.

남편이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해병대를 나왔다고 해서 늘 담대할 거라 믿었는데, 그 큰소리 뒤에 숨어 있던 나약한 이면을 나는 그제야 보았다.


정말 몰랐다.

그날의 사고가, 내 인생의 기나긴 간병의 시작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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