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3화. 결혼 45일 만의 사고

나는 왜 그를 떠나지 못하고 '대소변'을 받아냈을까?

by 나은

결혼 45일. 나는 신혼여행 가방 대신 '간병 가방'을 쌌다.


세브란스에서 이송된 언덕 위의 그 병원, 입구부터 코를 찌르던 소독약 냄새는 훗날 내게 '결혼 생활의 냄새'*로 기억되었다.

낡은 철제문이 삐걱거릴 때마다, 내 결혼 생활의 미래도 함께 금이 가는 소리 같았다.

그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화상 전문 병원이었지만, 내게는 '이혼하지 않는 죄'를 치르는 형벌의 장소였다.

나는 그 병원에서 꼬박 1년을 살았다.



분노와 식판이 날아든 6인실

아침이면 복도마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독약 냄새와 신음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하루가 시작됐다.

누군가는 그 아침을 버티지 못했고, 병실을 나설 때마다 시신이 지나갔다.


남편은 다리에 철심을 박고 침상에 누워 있었다.

결혼 한 달 반 만의 사고였다.

나는 병원에서 먹고 자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처음 석 달은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냈고, 그 이후에도 병실을 떠나지 못했다.

간병인도, 보호자도 없던 병원생활은 내게 결혼생활의 연장이 아니라 또 다른 형벌 같았다.


6인실에는 나보다 어린 환자들이 많았다.

불에 데어 팔을 감싼 채 신음하던 고등학생들, 그들을 다독이는 친구들의 목소리, 그 모든 풍경이 내게는 부러울 만큼 따뜻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이 지옥 같은 곳에서도 '함께'라는 온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고립시켰다.

하지만 내 옆의 남편은 달랐다.

침상에 누워 철심에 묶인 그의 분노는 오직 나를 향했고, 욕설은 병실의 일상이 되었다.


“다 네가 재수 없어서 그렇잖아. 네가 재수가 없어서 우리 결혼 생활이 이 지경이 된 거라고!”


그 한마디와 함께 날아온 것은 병원 식판이었다.

쨍그랑. 텅 빈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질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다른 보호자들의 싸늘하고도 궁금해하는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수치심과 서러움, 그리고 공포가 뒤섞여 숨 막히는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복도 끝 어둠, 그리고 자존감의 붕괴

화상병원으로 이송되던 구급차 안에서, 그는 산소마스크를 벗고 내 손을 붙잡았다.

"나를 버리지 마. 제발, 나를 버리지 마." 울음이 섞인 그 필사적인 절규.

이젠 다리에 철심을 박고 있는 침대 위의 환자도, 내 남편도 아닌, 증오와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낯선 남자만 남아 있었다.

가족이 그토록 말리던 오토바이를 기어이 사고, 신호를 무시해 달리던 그 결과를 누구에게 탓하겠는가.

그 모든 책임은 사고를 당한 그가 져야 마땅한데, 왜 나는 그의 죄책감까지 뒤집어쓴 채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중이었을까.


밤이면 나는 복도 끝 가장 어두운 의자에 앉아 눈을 감지 못했다. 소독약 냄새, 인공호흡기의 규칙적인 기계음, 복도 저편 누군가의 울음이 뒤섞인 이 공기 속에서 내 정신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정말 내가 재수가 없어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남편의 저주 같던 말이 이젠 내 안으로 파고들어 가장 단단했던 자존감을 갉아먹는 주문 같았다.

나는 알았다.

이 병실은 남편의 몸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썩어가는 곳이라는 것을.



새로운 배신을 위한 '들러리'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옥 같은 그 병실에서, 남편의 입가에 낯선 미소가 번졌다.

나는 처음엔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았다. 그 미소는 약기운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병실 문 끝에서, 새로운 보호자 복장을 한 여자 고등학생이 들어서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마치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그녀는 내 남편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어왔다.

나는 머리가 텅 비는 기분이었다.

나를 향해 식판을 던지던 그 분노와 욕설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맑은 미소가 될 수 있다니.


그날 이후, 소독약 냄새와 비명 소리 속에서 더디게 흘러가던 그 병원에서의 1년은, 갑자기 또 다른 방향으로, 가장 치명적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혼 45일 만에 시작된 나의 간병은 ‘헌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새로운 배신을 위한 ‘들러리’였던 것일까.

나는 그때, 비로소 ‘이혼하지 않는 죄’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독한 공포와 자책 속에서도 이 병실을 떠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이혼'이 아닌, 차마 떨칠 수 없는 단 하나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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