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4화. 배신, 헌신을 비웃다

불신의 씨앗: 결혼 첫 해, 헌신하던 아내에게 돌아온 '쪽지'의 배신

by 나은

남편이 입원한 곳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화상 전문 병원이었다. (결혼 첫 해인 2001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병원은 낡고 좁았으며, 모든 게 아날로그였다.

내과와 정형외과, 각종 진료과들이 함께 상주했지만 시설은 열악했다.

보호자들은 병실 한편에서 밥을 해 먹으며 음식을 나누는, 그야말로 ‘공동생활’ 같은 공간이었다.

면회 시간도 따로 없어 밤낮없이 누구나 드나드는 북새통.

그 안에서 나는 남편의 간병인, 그리고 병실의 일원으로 살았다.



냉정한 시선과 굶주림의 위안

하루는 공사장에서 추락한 60대 어르신이 옆 침대로 실려왔다.

하체 마비로 몸을 가누지 못했는데, 식사 시간이 되자 엎드린 채 숟가락을 겨우 입으로 가져가며 밥을 드셨다. 보는 내가 다 체할 것 같아 “식사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남편은 갑자기 날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뭔데? 오지랖 떨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

그때의 냉정한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친 몸보다 굶주림이 더 큰 고통이었을까.

허겁지겁 식판을 비우는 어르신을 보며 ‘삶의 고단함은 누구에게나 있구나’ 싶었다.

묘하게도 그 순간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시간이 흐르며 병실의 얼굴들은 수시로 바뀌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연스레 ‘방장’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루는 조폭 출신이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말끝마다 욕이 붙고, TV는 혼자 독점하며 자신의 폭력 전과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밤마다 침상에서 손을 놀리며 음담패설을 쏟아내던 그 남자.

병실의 모든 이들이 그를 외면하자, 며칠 못 버티고 퇴원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다음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어릴 적 화상으로 세 번째 입원이라 했다.

덩치는 컸지만 여전히 엄마 품에 기대 치료를 받았다.

그 아이의 엄마는 치료 시간마다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삼켰다.

“괜찮아, 엄마. 안 아파.”

그 씩씩한 목소리에, 나는 오래 잊었던 모성의 결을 보았다.


병실의 막내딸, 그리고 낯선 몸짓


그리고 그 애가 들어왔다.


남편은 창가 자리,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남편 옆 3개의 침대 중에 가운데 침대였다.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숨소리조차 다 들리는, 서로의 일상이 다 보였다.

처음 그 애를 봤을 땐 중학생쯤 되어 보였다.

작고 여린 얼굴, 앳된 미소. 고등학생이라 했지만 학교에 다니는 흔적은 없었다.

“아줌마, 아저씨.”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던 그 아이는 병실의 막내였다.

나는 반찬을 나눠주고, 시누이가 병문안을 오면 또래 조카들과 함께 식사도 시켜주곤 했다.

그저 안쓰럽고 귀여운, 병실의 막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애의 몸짓이 낯설게 느껴졌다.

헐렁한 트레이닝복 대신 스커트를 입고 나타났다.

어느 날은 굳이 아버지 침상 위로 올라가 다리를 벌려 걸터앉더니, 노골적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몰랐다.

‘에이,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렇겠지.’ 억측은 하지 않으려 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만 생각하니까.



등 떠미는 남편과 얼어붙은 가슴

그 무렵부터 남편은 이상할 만큼 생기가 돌았다.

환자복 차림에 농담을 던지며 병실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러더니 자꾸 나에게 말했다.

“당신도 피곤하잖아. 집에 가서 좀 쉬어.” 처음엔 떨어지기 싫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 다녀오라며 등을 떠미는 그의 태도. 묘한 불안이 밀려왔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새우잠으로 버텨온 내 몸은 이미 한계였다.

“그래, 하루쯤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병원을 나섰다.


며칠 후 돌아왔을 때, 둘의 거리는 눈에 띄게 가까워져 있었다.

웃으며 주고받는 손짓, 자연스러운 스킨십.

“여고생 아빠가 보기에도 좀 그렇잖아요. 괜한 오해 살 수도 있으니까 조심 좀 하세요.”

내 말에 남편은 비웃었다.

“너, 설마 질투하냐?” 그 한마디가 내 가슴을 얼렸다.

‘내가 질투하는 걸까?’ 하지만 그건 질투가 아니라 예감이었다.


시누이에게 털어놓자, 그녀도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과해. 내가 말해볼게.”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편함은 내 몫이었다.

말할수록 부끄럽고, 침묵할수록 썩어 들어갔다.



탁자 위의 낯선 이름: 불신의 씨앗

얼마 후, 그 애의 아버지가 퇴원했다.

아이도 함께 병실을 떠나야 했지만 아이의 발걸음은 병실 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서로의 눈빛이 묘하게 얽힌 채로.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 어떤 끈끈한 기류가 이미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며칠 뒤였다.

남편이 목발을 짚고 병실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다른 환자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탁자 위,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습관처럼 들여다본 액정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애' — 그 낯선 이름이, 내 눈앞에 선명하게 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그리고 이것은 25년간 나를 괴롭힐 남편의 수많은 문제들 중, 가장 처음 만난 지독한 불신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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