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5화. 이혼의 서막이 열리다

쪽지 한 장의 배신 - 창가의 빗줄기, 균열의 시작

by 나은

지금 나는 메가커피 2층 창가에 앉아, 도로로 향한 커다란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며칠째 내리는 가을비 탓에 몸속까지 한기가 스며든다.

햇살의 퇴근도 빨라져, 해가 지면 불과 여섯 시.

성급한 가을은 아직 적응할 틈도 주지 않고 겨울을 재촉한다.


학창 시절엔 비가 오면 우산을 접고, 팔을 비행기처럼 벌려 빗속을 달리곤 했다.

온몸으로 비를 맞는 게 그토록 좋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갱년기에 들어선 지금은 빗소리조차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같은 하늘 아래 내리는 빗줄기라도, 누군가에게는 단비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여름 내내 강릉이 극심한 가뭄으로 말라갔듯, 내 삶의 모든 생기도 그렇게 메말라 간다.

피해자 보호명령이 기각되어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다시 동거를 시작한 일상은 마치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다.


오전 한 시간만 허락되던 절수 조치.

땡! 소리와 함께 물을 쟁탈하려는 전쟁이 벌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도시에서 벌어진 원시적인 각축전.

화장실조차 쓰지 못할 만큼 단 5분 만에 물탱크가 바닥나기도 했다.


온정이 가득한 국민성으로 전국 각지에서 응원의 마음을 담아 보낸 생수.

그 성수(聖水)들은 어느새 애물단지가 되어 집집마다 쌓였고, 당근마켓에 올라온 ‘생수 팝니다’라는 글은 또 한 번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응원의 마음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순간 입게 되는 생채기.

나는 문득, 내 삶의 그날을 떠올렸다.



헌신은 사랑이 아니라 배신이었다

결혼 한 달 반 만에 남편의 교통사고로 직장을 포기하고, 냄새나는 화상병동에서 모든 시간을 바쳤던 그 시절. 하루 종일 환자들의 신음소리를 자장가로 삼고, 토사물을 삼키며 대소변을 받고, 갈라진 남편의 발뒤꿈치를 손으로 훑던 내 손길 속엔 오직 ‘사랑’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내겐 '고등학생과의 연락'이라는 배신으로 돌아왔다.


‘왜 여고생에게 전화번호를 준 걸까? 왜 내 앞에선 모른 척하고, 뒤로는 연락을 주고받았을까?’

그걸 이상하게 여긴 내가 이상한 걸까? 남편의 말대로 내가 망상 환자인 걸까? 아니, 정말로 내가 비정상이었던 걸까?

고등학생 아이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은 남편.

그가 당당했다면 내 앞에서 해도 되었을 것이다.


분명 남편에게 "괜한 오해 살 일은 하지 말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몇 달째 병원에서 쪽잠을 자느라 망가진 내 정신은, 이 모든 불길한 예감이 혹시 나만의 병적인 질투나 망상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수화기 너머의 침묵과 재확인

불안은 습관처럼 나를 갉아먹었다.

그리고 곧, 그 불안이 망상이 아님을 증명해 줄 순간이 찾아왔다.

남편이 목발을 짚고 병실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다른 환자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탁자 위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그 애'. 나는 숨을 멈췄다.


나는 끓어오르는 불안을 억누르며,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말 없이 뚝, 전화가 끊겼다.

아이였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끊은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남편의 핸드폰을 들고 남편을 향해 서 있었다.

남편은 나를 보고 흠칫했지만, 여전히 복도에서 잡담을 이어갔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도 '그 애'였다.



"심심하면 전화하라고..."


나는 꾹 다문 입술로 그대로 다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아이는 내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에 놀란 듯 한동안 멈칫하며 침묵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인사를 건넸다.

“아줌마, 저 선영이에요. 안녕하셨어요?”

“그래, 선영이구나. 아빠는 괜찮으시니?”

“네, 그냥 전화해 봤어요. 끊을게요.”

서둘러 끊으려는 아이를 붙잡았다.

“선영아, 이 번호는 어떻게 알게 됐어?”


아이의 다음 한 마디에 온몸의 피가 식는 것 같았다.

“퇴원하는 날 아저씨가 쪽지에 적어줬어요. 심심하면 전화하라고…”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랬구나. 전화 왔었다고 전해줄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 나이에 세상의 경계가 얼마나 좁은데.

그렇지만 책임은 아이가 아닌, 그 아이에게 쪽지를 건넨 어른에게 있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남편에게 전화를 건넸다.

남편은 흠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넘겼다.

그게 나의 착각이었다.

남이 하면 잘못이지만, 자신이 하면 언제나 예외였던 사람. 그게 남편이었다.

그는 식사조차 혼자 못하는 환자 신세면서도 내 헌신을 당연하게 여겼고, 내 의심을 죄로 몰았다.


그 어리석음 속에서 나는 수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이해하려 애쓰는 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기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닌 건 아니라 말해야 한다는 것을.

남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5년간 이 불신의 씨앗이 독버섯처럼 자랄 줄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음 화 예고] 남편의 다음 기행은 '여자 팬티 수집'이었다.

그때 왜 이혼하지 못했을까. 그 침묵과 죄책감의 20년을 고백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4화. 배신, 헌신을 비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