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네가 밥 한 번 해줬어?" 밥 타령하는 남편과 5kg 빠진 아내
오늘은 교회 목장예배가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 아이를 등교시키고 간식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포장해 담아둔 고메넛츠 두 개가 비어 있었다.
이번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쯤 되면 묵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사라진 '선'과 배우자에 대한 경멸
얼마 전에도 그랬다.
메추리알 여섯 알이 통째로 사라졌었다.
본인 누나가 30알 넘게 해 준 건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고, 굳이 내가 만든 여섯 알만 먹었다.
자신의 밥 여섯 덩어리는 그대로 두고, 내가 아이 주려던 밥을 먼저 먹던 그 심보와 다를 바 없다.
내가 한 음식이나 사다 둔 과일은 얼마든지 함께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것 대신 내가 '선을 그어둔' 걸 굳이 건드리는 건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다.
그건 배우자에 대한 존중의 결핍이자, 관계의 완벽한 붕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이 사소한 무례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 견과류, 가져간 거 줘.”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 그의 목소리가 병실 간병 때처럼 차갑게 소리쳤다.
“야, 네가 밥 한 번 해준 적 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나는 왜 그 사람의 고단함을 알아야 하는 걸까.
나는 아침엔 아이만 챙기고, 점심은 거르고, 저녁은 방에서 대충 먹는다.
그렇게 살이 5kg 넘게 빠졌다.
그런데 밥과 빨래 타령이라니.
이혼 소송 중에도 여전히 자신을 피해자로 세우며 윽박지르는 모습에서, 과거 남편에게 품었던 한때의 '측은함'이 얼마나 헛된 감정이었는지 깨닫는다.
며칠 전에는 더한 일도 있었다.
식탁에 두고 온 핸드폰을 가지러 나가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내 가방을 뒤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데도 "보지 않았다"라고 뻔뻔하게 발뺌한다.
그 순간, 내가 말을 이어 붙였다면 정말 사람의 심장이 멎었을지도 모른다.
멈춰버린 시간, 늦어버린 자책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왜 나는 이 모든 걸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겨왔을까.
누굴 탓할 수도, 나 자신을 자책하기에도 이미 늦은 시간이다.
다만, 1년 반의 이혼소송 동안 한집에 살며 이렇게까지 서로의 추악한 민낯을 봐야 하는 건지, 이혼을 원치 않는다던 그 입으로 어떻게 아이에게 이토록 무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다 등교시키고, 어쩌다 샤워시키는 것이 전부. 그마저도 '양육'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자고 되뇌어보지만, 이런 사소한 무례와 탐욕이 쌓이면 결국 미움보다 '경멸'이 남는다.
남편을 미워하기보다, 그런 인간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방치한 내 시선이 더 부끄럽다.
송곳 박힌 가슴: 멈춰버린 이혼 소송
날씨가 차가워지고, 짧은 가을이 스쳐간다.
이혼 소송을 시작한 지 1년 반, 재판 한 번 열리지 않았다.
12월이면 재판관들의 연말 업무로 재판은 멈추고, 1월은 신년 일정으로 분주하다.
이혼을 위한 재판 한 번 못한 현실이 참담하다.
내년 4월이면 전세 만기가 다가온다.
가슴이 막혀온다.
'이젠 약 없이 버텨보자' 다짐하지만, 결국 또 약의 굴레로 돌아온다.
나에게도 봄이 올까.
좋아하던 가을바람이 올해는 유난히 차갑다.
가슴 곳곳에 송곳이 박힌 듯,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상처가 도드라진다.
이 가을은 나에게 또 하나의 흉터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