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존 자금에 손대다
이혼소송을 시작하고,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경제적 유기' 상태로 내던져졌다.
한 달 생활비라 해봐야 고작 100만 원.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을 제하고 나면 남는 건 50만 원이었다.
그 쥐꼬리만 한 돈마저 끊기자, 궁핍은 더 이상 추상이 아닌 잔혹한 현실이 되었다.
결국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증권계좌를 열어보았다.
내 잔액에 손을 대 인출 버튼을 누르는 일, 그것이 25년 만에 내가 낸 유일한 용기였다.
파멸의 비용은 왜 내 몫인가
사실 이 모든 시작은 변호사비였다.
이혼소송을 위해 해지해야 했던, 내 이름의 펀드 1,000만 원.
25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생활비 외에는 단돈 만 원도 내 계좌에서 쓰지 않았다.
나는 성실한 아내였고, 미련하게 순종했다.
그런데 이혼을 앞둔 이 순간, 내 순종과 절약이 남긴 것은 이 허망함뿐이었다.
나는 지금, 내 파멸의 비용을 내 돈으로 치르고 있었다.
남편은 늘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자신을 성실하다고 믿었지만, 그의 성실함은 결코 '나'를 위한 게 아니었다. 그는 내 의사를 묻지 않았다.
자신이 번 돈이라며 쓰고 싶을 때 쓰고, 내고 싶을 때 내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병원비라도 필요하면 일일이 사정을 설명해야 했고, 그럼에도 제값을 다 돌려받지 못해 펑크 난 지출을 메우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아이 사정상 경조사 자체가 드물었지만, 단 한 번뿐인 외사촌 결혼식,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인 그 자리에서조차 남편은 축의금 한 푼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빈손으로, 세상 가장 부끄러운 딸의 모습으로 결혼식장에 섰다.
25년 굴종의 빚과 '생존 인출'
돌이켜보면 도통 모르겠다.
왜 단 한 번도 남편의 지갑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는지.
왜 나는 그토록 궁색하게 굴복했는지.
그 미련한 25년 순종의 빚을, 나는 지금 이 가난한 '자유'로 갚아나가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식당 메뉴판 앞에서 가격이 아닌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여유, 2인 3 메뉴를 시킬 수 있는 여유가 부의 상징이라 생각했다.
늘 허기진 마음이 그렇게 소소한 식탐으로 표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소소한 꿈을 꾸던 나는 이제 내 이름의 잔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었다.
의료보험이 묶였던 해, 100만 원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이젠 국민연금과 보험료까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다시 인출 버튼을 눌렀다.
'손대지 말라': 소유하려는 마지막 집착
그런데, 이 집의 텅 빈 대화 속에서도 그는 내 생존 자금의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손대지 말라." 단 두 마디의 경고, 그것은 내 유일한 탈출구에 대한 봉쇄 명령이었다.
일상을 감시하는 공동 캘린더, 휴대폰을 뒤지는 행위,
그리고 이제는 내 은행 입출금 내역까지.
그의 감시는 이혼 후에도 나를 소유하려는 마지막 집착이었다.
이혼을 원치 않는 남편의 행동엔 늘 저의가 숨어 있다.
결국 돈이다.
이혼이 성립되면 그는 재산분할을 해야 한다.
단 돈 만 원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그건 곧 '패배의 선언'이니까.
하지만 나는 큰돈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와 내가 새 삶을 시작할 2~3년의 공백을 메워줄 만큼이면 된다.
작은 전셋집 하나,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할 최소한의 자금.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
'나는 지금, 내 생존의 이름으로 돈을 쓴다.
잔고에 손을 댄 게 죄라면, 이혼하지 않고 견딘 지난 세월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도 남편은 거실 불을 끈 채 드러누워 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감는다.
그가 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가시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날들이 끝나기를, 내가 더 이상 '그의 그림자'를 보지 않아도 되기를, 오늘도 조용히,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