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9화. 살아있다는 증명

내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생명수였다

by 나은

지금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이 글을 쓴다.

각자의 이유로 모인 사람들, 다양한 연령대의 얼굴들 사이에서 나 또한 한 칸의 자리를 차지한 채 묵묵히 오늘을 버틴다.


누리고 싶던 소비의 꿈은 불확실한 이혼 앞에서 조각처럼 흩어졌다.

결국 나는 홈플러스에서 1,490원짜리 주먹밥 두 개로 허기를 채운다.

덩치가 훌쩍 큰 아이는 먹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계산기를 두드린다.


멈추지 않는 생존, 신중년 인턴의 삶

현재 나는 ‘신중년 일자리 사업’으로 연계된 스타트업 기업에서 두 달간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목·금요일은 개인 일정으로 채운다.

시간당 1만 5천 원, 한 달 꼬박 일해도 150만 원 남짓의 돈이다.

이 돈으로 삶의 틈새를 메우며 “조금 더 버텨보자” 스스로를 다독인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 할까 고민하지만 이사 준비와 이혼 소송의 여파를 생각하면 어디에도 정착하기가 두렵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이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겉보기엔 여전히 멀쩡하다.

누군가는 나를 ‘호위호식하는 여유 있는 여자’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메뉴판 앞에서 가격이 아닌 욕망으로 음식을 고를 수 있는 것을 부자라 여겼던 내게, 현실은 여전히 씁쓸하다.

돈이란, 쓰면 허무하고, 쓰지 않으면 아련하다.

갖고 싶은 옷, 가방, 모든 것이 막상 손에 들어오면 감흥은 사라진다.

결국 두근거림은 ‘갖기 전’의 설렘이었다.


MZ세대에게 배우는 '살아있음'의 감각

요즘 나는 그 설렘을 ‘일’에서 찾는다.

인턴으로 일하는 회사는 젊은 스타트업이다.

대부분 MZ세대인 그들과 부대끼며 내가 오해하고 있던 세대를 새로 배우고 있다.


그들은 무책임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일까지 도맡아 하는 멀티 플레이어였고, 야근을 자처하고, 주말도 반납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얼죽아’를 고집하면서도 씀씀이를 맞추기 위해 다리품을 파는 세대.

그들 앞에서 나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부끄러워했다.


그들에게 고맙다.

그들의 땀과 열정이 나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감각을 다시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의 포스코 사거리를 건널 때면 사람들 틈에서 묘한 벅참이 밀려온다.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 그들 사이를 걷는 나도 살아있음느낀다.


이혼은 복수가 아닌 심폐소생술

그래, 내가 바라는 건 이런 삶이다.

힘들어도, 피곤해도, 무언가 이루고 있다는 그 한 줌의 성취감.

비난의 시선이 아닌, 격려와 응원이 나를 성장시킨다.


이혼은 복수가 아니다.

보상이 아니라 감수(甘受)이다.

죽은 채로 눈만 뜨고 있던 지난 세월에서 이제야 나는 심폐소생술을 받고 살아났다.

나는 살아있고 싶다.

살아가고 싶다.

숨 막히던 결혼이라는 무덤에서 벗어나 이제야 나는 진짜 호흡을 배운다.


응원한다.

나와 같은 처지의, 한때 죽은 듯 버텨온 모든 이들을.

지금 내가 낸 것은 용기가 아니라 생명수였다.

그리고 그 물은 이미 내 안에서 흐르고 있다.

이제, 나는 멈추지 않겠다.

오래도록, 새 삶을 살아내겠다.



“이혼은 내 심폐소생술이었다.

이제 나는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그 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8화. 25년 순종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