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 보통의 삶을 위한 레이(Ray)의 꿈
어둠이 내렸다.
8시가 넘도록 환하게 자태를 뽐내던 햇살은 기가 죽어 어둠에 의해 잘린 채 귀갓길을 서두른다.
나도 이제 곧 퇴근시간인데 돌아갈 집이 없다.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잘못 눌러 삐삐익 울려대는 신경질적인 소리는, 갈 곳을 잃고 서성이던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아이를 데리러 9시쯤 다시 나가야 하는데, 잠시라도 집에 가자니 번거롭고, 아침에 싸 들고 온 무거운 짐을 들고 거리를 헤매려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이럴 때 그렇게 좋아하는 경차 '레이'라도 한 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그러더라.
자기 주도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운전을 좋아한다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의 속도에 맞춰 운전하는 것이 자기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는 것*과 같다고.
나도 한때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꿈꾸며 해방감을 만끽한 채 시골 비포장도로를 누비는 상상을 했었다. 목에 휘감은 휘황찬란한 스카프가 바람에 나부끼며 질주하는 차의 속도에 나자빠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더 좋은 스카프가 앞날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만큼의 나이를 먹었을 땐 삶의 질도 통통하게 살찌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아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더욱 확연히 느끼려 하고 있다.
이혼으로 인해 벌어들이게 되는 수익은 전혀 없다.
얻는 것은 오직 자유, 그리고 내 삶을 다시 잇게 되는 기회뿐이다.
내가 계획하는 삶을 내 생각대로 실천하며 남은 인생을 사는 것.
과정에 배를 좀 곯는다고 죽기야 하겠냐만은...
덩치 큰 남자아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가 얼마나 할애될까?
주민등록증이 나온 아이와 살려면 최소한 방은 2개여야 하고, 쿵쿵 발망치를 찍는 아이를 고려한다면 변두리 빌라가 나을까?
미디어에 나오는 정신 나간 아랫집을 만나게 된다면 어쩌지...
이 걱정들이 궁색하다. 그
동안의 삶도 온전히 내 몫의 감당이었지만, 당장 집을 구해야 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부담이 된다.
혼자 산다면 원룸도 충분하지만, 성이 다른 아이와는 아무래도 한 공간에서 24시간을 보내기엔 무리가 있다.
독립이 목표인 아이가 혼자 자겠다고 선언한 지 오래지만, 현재로선 내 방에 꼬박꼬박 들어와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정이 그리운 걸까?
잠결에도 번번이 대답해 주는 아이와 나의 결합은 문제가 안 되지만, 직장을 다니게 되면 방학이나 휴업일에 혼자 보내야 할 아이의 시간이 걱정된다.
왜 남들처럼 그냥 좀 평범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내가 꿈꾸는 것은, 아니 바라는 것은 더 나은 삶이 결코 아니다.
그냥, 베이식한 보통의 삶. 그게 나에겐 너무나 어렵고 벅찬 것이다.
돌아가기 버거운 집을 향해 객쩍은 푸념을 늘어놓는다.
누군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겠는가?
속을 들여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객쩍은 푸념은 하지 말자. 버릇되면 더 지치게 된다.
나는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12월까지 든든한 기도의 동역자들로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울퉁불퉁한 시간대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대에 말씀을 듣고 기도를 올리겠다.
일정한 규칙이 심적 안정을 주니까.
노력하자.
더 노력하자.
그토록 바라던 보통의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