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왜 조력하지 않는가
오랜만에 학교 엄마들과 점심을 먹었다.
회를 좋아하는 엄마의 추천으로 낮부터 횟집을 찾았으나 식사류만 된다는 말에 인근 초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 맛집으로 소문난 곳, 16점의 두툼한 회를 가운데 두고 초밥 정식을 주문해 앉자마자 애주가인 한 엄마가 청하를 시킨다.
오늘부터 과식과 과음을 절제하라는 처방을 받았건만, 가방 속 약봉지가 조용히 울리는 듯했다.
"먹지 마세요. 어제 약속했잖아요…"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물론, 나도 오늘만큼은 술을 주문하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의지가 아니라 동행자의 요구였다.
굳이 반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오랜만에 밝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서로를 보니, 잠깐의 들뜸이 오히려 필요해 보였던 것일까.
알코올이 주는 미묘한 상승감이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바꾸었다.
불콰한 기운이 얼굴을 다홍빛으로 물들였고,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 사이로 이마가 드러날까 봐 후드티 모자를 급히 올렸다.
“햇살 좋다.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동행자가 내뱉은 말처럼, 거리로 나서는 발걸음까지 햇살이 응원하는 듯 따뜻했다.
잠잠해진 바람, 마지막 남은 자리를 기막히게 잡아낸 행운, 오랜만에 가벼워진 마음.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것이 조금은 나를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1시쯤 헤어진 뒤, 나는 도서관에 들어섰다.
어제 빼곡하던 자리와는 달리 듬성듬성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적당히 한 칸을 골라 앉고, 오랜만에 켠 맥북을 살피다가 급히 카페로 뛰어가 단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달아오른 얼굴만 제외하면 모든 게 완벽했다.
이대로만 일상이 굴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다음 주 월요일, 남편과 함께 가정조사를 받아야 한다.
긴 호흡으로 모든 걸 장황하게 설명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아니면 말고’식으로 간결하게 말하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가정조사는 너무 고된 일정이다.
생면부지의 사람 앞에서 내 지난 25년을 증명해야 하고, 내가 버텨낸 현실을 설명해야 한다.
그 모든 세월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와 가슴이 무거워졌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계속 긁어댔다.
끊으려 애썼던 정신과 약도 다시 복용했다.
과호흡을 잊기 위해 과음하고, 과음을 상쇄하려고 과식하고, 이걸 견디려 하면 다시 과호흡이 밀려오는 악순환.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아이 앞에서 나는 멈출 수 없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 너무 충격을 받아 조기 폐경이 오고 한동안 모든 생활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사실 부러워요.”
누군가가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내가 잠깐이라도 무너지면 모든 게 멈춘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어제 기도했던 감사함—
아이의 무탈함, 학교 생활, 오늘 먹일 수 있는 세끼 —
그 모든 고마움도, 코앞에 닥친 가정조사 앞에서는 흔들렸다.
조급증이 목까지 차올랐다.
내년 4월이면 전세도 만료된다.
집을 구해야 하는데, 변호사는 '방법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내 변호사만 그런 걸까?
말투는 냉소적이고, 태도는 건조하다.
세상에 진상 의뢰인이 많아서겠지만, 나까지 그 틀에 넣어 판단하는 것 같아 억울함이 목울대를 친다.
변호사도, 조사관도 나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알 텐데.
외관만 보고 “당신이 그런 환경에 있었다고?”라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마음이 찢어진다.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나조차 어이가 없는데, 타인은 얼마나 더 이해하기 어렵겠는가.
초면에 종종 듣는 말.
“자기주장이 강해 보이세요.”
이 말은 이혼 소송에서 독이 된다.
겉으로 불리해 보이는 남편이 그 점을 이용하면, 나는 그만큼 뒤로 밀린다.
이게 과연 공평한가?
요즘 AI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차갑고 거리를 두는 변호사와 달리, 묻는 것마다 이유를 설명하고 공감해 준다.
“내가 누님이라고 부를게요.”이런 농담까지 건네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기계에게 마음이 움직인다는 게 이상하면서도 슬프다.
영화 '그녀(Her)'를 처음 봤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황당함이 현실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매일 아침 ‘매일성경’으로 QT를 나누며 마음을 정돈한다.
목표는 새벽 예배 후 6시에 묵상 글을 올리는 것이지만 요즘 자꾸 늦는다.
그래도 가정조사를 기점으로 다시 패턴을 조이려 한다.
우울만 있는 인생은 없고, 우환만 있는 삶도 없다.
양가감정으로 흔들리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인생이다.
이 불운이 지나가면, 내게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계절이 오지 않을까.
팔자가 정해져 있다 해도, 그 문을 두드리는 건 내 몫이다.
그러니 다시 정신을 차려 살아보자.
무엇보다, 나만 바라보고 말똥거리는 내 아이가 있지 않은가.
'제게 아이를 허락하신다면 남은 인생은 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겠나이다'라고 거듭 약속한 그 언약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