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결혼생활, 왜곡된 기억으로 버텨온 나

새벽기도로 다잡던 마음이 무너진 순간

by 나은

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 17화


요즘 새벽에 일어나 매일성경을 읽고 단톡방에서 QT를 나누고 있다.

마음을 울리는 문구를 뽑고 그걸 내 생활과 대비해 서술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기도를 올린다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던지는 자기 위로의 단면인 거다.


그런데.... 가사조사 후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아 가던 중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지나간 과거를 잊기 위해 왜곡된 기억을 장착한 내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기억을 사실로 채우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한 방편으로 꼬우고 꼬아 저장한 덕이다.

당시 솟구치는 분노를 잠재우고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란 절규를 소거하기 위해 발버둥 치다 터득한 방법이 기억의 가공인 것이다.

지난 25년간 그렇게 애쓰고 살았다 현실을 살면서 같이 사는 사람에게 가면을 씌우고, 그 사람이 단행한 온갖 만행을 나 좋을 대로 해석해서 겨우겨우 하루를 연명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사관 앞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하는 것을 끄집어내면 낼수록 파편화되어 흩어졌던 아픔들이 덩어리로 뭉쳐서 가슴을 후벼 파기 시작하는데...

돌아오는 길에 너무 괴롭고 아파서 편의점에 들러 소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골방에 갇혀 안주 없이 한 잔, 한 잔, 그렇게 마지막까지 비워냈다.

조사 시 물밀듯 밀려드는 모든 감정들을 전부 다 너저분하게 읊어낼 수도 없는 일.

또한, 그렇게까지 모진 사람과 살아온 나도 온전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역설하는 꼴이 되니 한마디로 진퇴양난이었다.

무엇보다 남자 가사조사관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것이 없다는 온라인 정보에 의해 억울하고 분노할 상대편 이야기가 많았지만 일일이 반문하지는 않았다.

내가 나를 대변하는 일인데 정도를 지켜야 하는 게 가사조사인 것이다.

수많은 값을 치러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도움은 전혀 없는 것이다.

온전히 나 혼자 모든 것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남편도 답답해 하기는 나보다 더했다.

이혼에 반대하는 그로서는 반문을 하되 나를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대한 절제하려고 애쓰는 그였지만,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조사관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이 아니라 에둘러 변명하자니 힘들고...

그렇다고 성질대로 하자니 변호사에게 받은 코치가 있는 모양 있어서 나를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았으나...

"아내도 성격이 보통이 아닙니다. 아내는 저를 충분히 알고 있어서 요령 껏 잘 구슬려 생활하면 무탈할 텐데..."라는 등의 비꼼을 중간중간 하면서 자신을 방어했다.


조사관은 다시 반복해서 물었다.

"아내분은 절대적으로 이혼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제가 노력해야죠."

"뭘 어떻게 노력하겠다는 겁니까?"

"제가 많은 걸 내려놓겠습니다..."


어떤 노력을 어떤 식으로 해도 이혼을 향한 강경한 나의 마음은 바뀌지 않을 테지만, 같이 살던 사람이 저렇게까지 아둔할 줄은...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고,

"아내도 저만큼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 지나면 마음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까지 날 모를 줄이야... 그러니 그렇게 살았겠지만..'


조사관이 만약에 만약에를 거듭하며 재산분할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저는 항소할 겁니다. 이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항변한다.

또다시 만약에를 거듭하며 재차 물으니,

"변호사가 7-3으로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질문에는 "왜 꼭 여자가 아이를 맡아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순간, 헐...

아이가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교육기간이 어디인지, 미래 설계는 어떻게 할 건지 등등 아는 것이 전혀 없지 않냐고 하니

"아내도 처음부터 알지 못했듯이 저도 차차 배워나가면 됩니다."

그렇다.

예상했던 대로 결국 아이까지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거다.


나에게도 조사관이 물었다.

"남자 아이고 덩치도 크고 한데 문제행동이 나오거나 하면 감당이 되시겠어요?"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힘듭니다. 저도 아무리 제 아이지만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에게 맡기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나요...? 아이의 루틴이나 감정을 읽을 수 있으니, 그리고 중요 시점이니 만큼 제가 맡아서 양육해야지요."


남편의 성향상 아이를 미끼로 날 흔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재로선 딱히 방법이 없다.

술수에 말리지 않기 위해 전략상 덥석 아이를 건네고도 싶으나 어차피 잠깐일지라도 혹시라도 받게 될 아이의 상처는 어쩌리...

성인기를 준비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는 각종 정보를 수집해 여기저기 인터뷰를 해야 하는 중요 시기라 그런 도박을 할 수는 없는 거다.

더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분간이라도 떨어져 내 마음을 추스르고 싶지만, 환청처럼 늘 들리는 "엄마, 엄마, 엄마~~" 이 소리를 어찌 듣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아이에 대한 나의 책임감이 전부이다.

이 상황에서 급변하는 내 인생이 펼쳐질 리도 만무이고, 그렇다고 상처받은 영혼을 도닥여줄 이성에 대한 갈금도 전혀 없다.

오로지 나로 인해 세상에 나온 내 아이를 온전히 잘 거두는 것이 남은 나의 사명일진대 어떻게 힘들다고 아이를 떨어뜨린단 말인가?


가사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찌나 마음이 휑하던지...

'괜찮아,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라고 몇 번이나 자위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기억의 왜곡으로 꾹꾹 눌러왔던 지난날의 억울함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지지말자, 나의 과거에 함몰되지 말자. 다 지난 일이야...'

이렇게 못나고 연약한 내가 앞으로 잘 살 수 있을까?

잘 산다는 것이 물질로 풍족함도 아니요, 정신적 만족도 아니고 단지 남들처럼 보통의 삶을 살아내는 것인데 나에겐 왜 이리 어려운 것인지...


아무도 현재의 내가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지 모른다.

가끔은 나도 욕도 하고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뱉어내고 싶지만, 그 후에 밀려올 허무함을 이길 자신이 없어 이렇게 혼자 버틴다.

때론 위로도 상처가 된다.

뭘 얼마나 알겠는가?

있는 그대로 쏟아내지 못하는 내 감정을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혼소송 시작한 지 1년 반...

재판 한 번 못하고 이렇게 한 해가 넘어갈 것 같다.

1.2월은 법원 인사 조정 기간이라 법원이 바빠서 재판기일이 안 잡힐 거란다.

빨라야 3월인데 한 번으로 판결이 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저 쪽에서 항고를 하게 되면 지지부진한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난 더 모질어질 수 있을까? 더 약해지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잘 살아냈다.

이런 식으로 내일도 잘 버텨 보겠다.

언젠가는 오겠지...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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