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 11- 새벽 다섯 시의 침묵

불임 11편 - 아무 말 없는 싸움, 그리고

by 나은

밤 12시가 넘도록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다시 들었다가, 또 내려놓는다.


머리는 이성을 붙잡으려 하는데, 가슴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계속 귓가에 맴도는 그 여자 목소리. 누굴까?

왜 그 시간에 그의 곁에 있었을까?


하지만 묻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다.


무슨 말을 들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륜이니 외도니…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다고 내가 이혼을 할까?

아니, 그러면 나는 패배자가 되는데.


머릿속이 시끄럽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들을 애써 흔들어 지워버린다.


"그러면, 그렇다면, 그래서 어쩌자고?"


됐다.

이런들, 저런들… 임신만 하면 다 해결될 거야.

모든 게 정리될 거야.

울퉁불퉁한 내 인생도, 단단히 눌러 잘 다듬어질 거야.


그래, 그저 임신만 하면 돼.


베개에 얼굴을 묻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자고 싶다.

그저 잠들고 싶다.

잘 자야만 한다.

그런데 눈꺼풀은 도무지 감기지 않는다.

이 지독한 불면.


냉동 배아 16개.

그 모든 수정란을 이식했지만, 나는 임신에 실패했다.

다시 원점이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다시 주사를 찌르고,

다시 과배란을 유도하고, 다시 난자를 채취하고,

다시 정자와 수정란을 만들고, 다시 착상을 시도한다.


몇 번째였더라.

이제는 세는 것도 무의미하다.


남편은 점점 더 무심해졌다.

이젠 대놓고 귀찮아한다.

어떤 날은, 경멸의 눈빛도 보였다.

마치 벌레를 보듯…


그즈음 우리 집 천장에는 '돈벌레'라 불리는 벌레가 자주 출몰했다.

기괴한 모습에 놀라지만, 애프킬라를 뿌리면 맥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수십 개의 다리가 꼬여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


딱, 그랬다.

그게 그때의 나였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했지만,

속은 이미 구겨지고 말라붙은, 죽어가는 생명체.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언제 마지막으로 웃었던가.

왜 요즘 개그는 이토록 슬픈가.

팔에 바람만 스쳐도 소름이 돋고, 비 내리는 날이면 뛰쳐나가 빗속에서 그냥 울고 싶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게,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가고 싶다.


새벽 다섯 시.

희미하게 해가 떠오른다.

잔 건지, 잠에 빠졌다 깬 건지…

그 사이가 가물가물하다.


거실로 나가본다.

남편이 소파에 웅크린 채 누워 있다.


'그래도... 와줬어.'

아주 잠깐 안도의 마음이 스치는가 싶더니,

'기껏 와서는 저런 식으로...'

이내 씁쓸한 마음이 뒤따른다.


나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선다.

내가 있는 걸 알면서도,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깨만 살짝 움찔할 뿐.


하…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겁다.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이 고통은 언제쯤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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