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12화
추석이었다. 시댁으로 향해야 하는 날.
남편의 현장이 일산 쪽이라, 나는 먼저 그곳으로 움직였다.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찜질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요즘 들어 남편과 나 둘 다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아 배가 몹시 고팠다.
그럼에도 혼자서 뭘 먹기가 애매했다.
'곧 연락이 오겠지', '잠깐이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조금 더'를 반복하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밤 9시가 되었다.
"후—"
깊은 한숨과 함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낼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밖으로 나와."
이 시간까지 일하느라 식사도 못 했을 남편을 생각하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꾹 누르고 애써 해맑은 척 밖으로 나갔다.
"휴게소에서 뭐라도 먹을까?"
조심스레 물었다.
"차 막히는데 먹긴 뭘 먹어. 그냥 가야지."
헉.
"배 안 고파? 가면 늦을 텐데… 도착해서 먹기는 좀 그렇잖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말했다.
"난 먹었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혼자 먼저 먹었다는 말보다,
기다리는 나를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 냉정한 말투가 더 아팠다.
"나는… 같이 먹으려고 했지. 기다리고 있는 거 알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용기를 냈지만, 돌아온 건 남편의 불호령이었다.
"야, 일하는 사람이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업체에서 사람이 왔는데 안 먹고 그냥 보내냐?"
누가 뭘 나무랐나.
내가 업체 사람이 온 걸 어찌 알겠어?
왜 이렇게 나에게만 화를 내는 걸까.
기다린 것도 나고, 굶은 것도 나고, 같이 밥 먹고 싶어 미련 부린 것도 나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게,
'너는 내 생각 안 해도 되는 사람'처럼 말할 수 있을까.
참고 참으면 참아지나… 참아진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귀성길에 올랐다.
밤인데도 차량 행렬이 끝이 없었다.
강원도까지 6시간이라는데, 체감은 그보다 훨씬 멀게 느껴졌다.
6명의 시누이에게 둘러싸일 걸 생각하니 차라리 12시간쯤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끝 모를 정체가 어쩌면 지금은 더 나았다.
창문을 살짝 내리자 어디선가 매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차는 멈췄다가 또 가고, 가다 멈추고, 또 멈춘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 왜 이렇게 멈춰 서기만 하지?
왜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지?
조금은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정체를 지나… 침체되어 가는 건 정말 괜찮은 걸까?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는 자신을 짓밟고 지나가는 차들에 속으로 울고 있는 것 같다.
'아프다'라고. 아프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나는 아픈 건지, 그냥 지친 건지.
이제는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간다.
그게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