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10화 모든 게 부서지던 그때
토요일 오후, 남편의 핸드폰에서 유난히 크고 또렷한 알림음이 울렸다.
무심코 손이 닿았을 뿐인데, 잠금 화면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바부탱이야, 주말 잘 보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바부탱이?
마흔이 넘은 유부남에게 그런 호칭이 어울리는 건가.
'주말 잘 보내'는 말을 굳이 이렇게 톡으로 남길 필요가 있나.
뒤따른 이모티콘도,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그때, 남편이 핸드폰을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황급히 변명했다.
"아, 이 자식 또 장난치네. 진짜 짜증 나..."
... 누가 물어봤나? 괜한 변명은 오히려 칼날이 되어 박혔다.
모른 척, 지나가려 했다.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후로 남편은 달라졌다.
갑자기 두터운 무릎 담요가 필요하다고 했다.
'밍크 담요처럼 크고 포근한 게 필요하다'며, 차 안에서 히터 없이 쉴 때 쓰겠다고 했다.
그 담요는 대학로에서 샀다.
생각보다 컸고, 너무 따뜻해 보였다.
누군가를 감싸기에 충분할 만큼.
그다음엔 속옷 얘기.
스포츠용 속옷이 갖고 싶다고 졸랐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사줬다.
아니, 사줘야만 했다.
그리고 남편은 점점 집에 오지 않았다.
주말에도, 밤에도. 집 안의 공기는 서서히 냉각되어 차가운 침묵만 맴돌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지금, 아이를 갖기 위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으니까.
이 고통스러운 노력만큼은 지켜내고 싶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다음 날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인데, 남편은 또 집에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아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분명 핸드폰을 들고 있는 듯한데, 말이 없다.
들리는 건, 꾹 참는 듯한 한숨 소리뿐.
"여보세요..."
그 순간, 낯선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들어? 많이 힘들어? 그냥... 끊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테이블 소리일까? 아니면...
"여보세요? 듣고 있어?" 내가 다시 물었다.
"왜?"
'왜?' 라니. 지금 이 상황에서 '왜' 라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누르고, 애써 말끝을 정리했다.
"내일 병원에 가야 해서, 아직 안 오길래..."
"바쁜데, 가야 해?"
좋겠다. 바빠서.
나는 지금, 너무 한가해서 미칠 지경인데.
아니, 한 가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미쳐버릴 것 같은데...
"같이 오라고 했어, 병원에서."
"... 끊어."
뚝. 뚜~~ 욱...
온다는 건지, 안 온다는 건지.
아무런 말도, 설명도 없이 전화는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말이 없다.
그저... 긴 한숨만 수화기를 채운다.
마치 다른 누군가에게 하는 소리처럼.
마치 내가 낄 자리가 아닌 대화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레, 잔인하게 장면이 그려진다.
그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고, 남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든 척을 하고,
그녀는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토닥이고, 남편은 그것을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즐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나는,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오염물이 되어 있다.
그렇게 시작이었다.
남편의 사생활은.
그리고
나의 지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