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만의 자유
술을 잘하는 동생과 단둘이 만났다.
이혼을 결심하며 만들어진 작은 음주 모임, 동생은 그곳의 막내였다.
한 달에 한 번 네 명이 모여 술잔을 기울인다.
다들 술을 곧잘 마셨고, 나만 유난히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따라 마셨다.
결국 몸은 견디질 못했다.
하지만 이 모임에서만큼은 나를 감추지 않았다.
이혼 이야기를 가장 먼저 털어놓은 상대들이기에, 술잔을 앞에 두고만 있으면 내 속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늘 허무가 몰려왔다.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스스로를 탓하며 괜찮은 척 고개만 끄덕였다.
봄 어느 날엔 귀갓길에 발이 꼬여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다.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비틀거리던 주정뱅이 아저씨가 떠올랐다.
왜 이렇게 어지럽지?
왜 앞으로 똑바로 나아가지 못할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발이 꼬여 무너졌다.
처음 신은 와인색 앵클부츠는 아스팔트에 긁혀버렸고, 스타킹 무릎은 너덜거렸다.
손에 꼭 쥐고 있던 폴드폰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
순간 나는 카페앞에 주저앉아, 깨진 화면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넋 놓았다.
‘이런 C, 보험도 이미 두 번 다 썼는데…’
체념 섞인 독백이 새어나왔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늘 이어폰을 꽂았다.
애잔한 사랑 노래가 귀에 스며들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다 괜찮아….
깨진 액정, 긁힌 부츠, 찢어진 스타킹은 현재의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너무 아파 잔뜩 웅크린 채 마음을 쓰다듬어 보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날 밤 달빛은 유난히 밝았다. "달아 달아, 어서 돌아가. 자꾸만 따라오면 내 마음이 더 아리잖아…" 어릴 적 보준이가 외치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겹쳤다. 달빛 아래에서 나는 또다시 울컥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는 교회 수련회에 가 있었고, 남편은 더 이상 나를 채근하지 못했다.
드디어, 온전히 나만을 위한 밤이 찾아온 것이다.
좋아하는 해산물을 앞에 두고 모처럼 입맛이 돌았다.
청하 두 병을 거뜬히 비웠고, 2차로는 샤케집에 들렀다.
캔 속 싸구려 술과 저렴한 안주가 오히려 맛깔스러웠다.
음악도, 술도, 안주도 좋았다.
무엇보다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 자유가 있었다.
오늘만큼은 나를 놓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나를 잊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나이고 싶었다.
그렇게 자유의 시간을 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서 동생이 남자친구를 기다리던 순간을 함께하다가…
그 뒤의 기억은 희미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어지러운 감각.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스쳤다.
낯설고 불쾌한 기운이 몸을 덮쳤다.
끈적이고 무거운 무언가가 나를 짓눌렀다.
나는 깨달았다.
또 다른 폭력이 나를 삼켜버렸다는 것을.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모든 게 사라진 듯 평온해질까?
아니면 이 감각이 내 안에 또 다른 상처로 남게 될까?
나는 지금도 묻는다.
“이게 마지막 폭력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