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걸어야 한다.
한 집에 살지만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남처럼 아니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인 양 그 어떤 몸짓도 없이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간다.
방학을 맞아 아이는 교회에서 2박 3일간 여는 수련회에 참석을 했다.
모처럼 주어진 2일간의 여유. 늘 그렇듯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면 세상을 다 품을 듯 온갖 일을 다 할 것처럼 마음은 부풀지만, 정작 나는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어 누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약속을 밥 먹듯 어기던 학교 엄마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도 의미 없는 장황한 훈계를 듣게 될까 두려워 차마 전화기를 들지 못한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하루의 시간이 휙 지나간다.
뒹굴뒹굴… 오른쪽, 왼쪽 허리가 아파 구르고 돌리고, 목도 어깨도 뻐근해진다.
높게 쌓아 올린 베개에 몸은 잔뜩 긴장하고, 새벽까지 졸린 눈을 억지로 치켜세우며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부지런히 오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든다.
다음 날 아침, 머리는 무겁고 띵하다.
식욕이 생길 리 만무하고,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려 해도 몸은 욱신거린다.
집에 쭈그리고 누워 있자니 거실에 자리를 잡고 불침번처럼 앉아 있는 남편의 존재가 신경 쓰인다.
의식하는 건 아니지만, 2박 3일 동안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마치 ‘네가 없으면 난 이렇게 외롭고 할 일 없이 무너져’라는 몸짓을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아는 동생과의 약속에 앞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이의 수련회 기간 동안 짝꿍이 된 선생님께 작은 감사의 표시를 드리기 위해 신세계를 찾았다.
모처럼 온 백화점이지만 지상으로는 올라가지 않고, 지하 식품 매장을 수없이 배회했다.
저녁에만 날 동생 어머님께도 함께 드리면 좋을 것 같아 두 사람의 취향을 맞추고, 보냉이 필요 없는 디저트를 고르려니 발바닥이 아파왔다.
눈에, 머리에 익숙하게 새겨진 제품을 선택해 두 개를 샀다.
지하상가도 한 바퀴 돌았다.
젤리 소재로 된 귀여운 캐릭터 안경집이 눈에 들어와 새언니를 떠올리며 색상을 달리해 하나 더 구입했다.
그러다 막힌 왼쪽 귀를 뚫을까 매장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20대에 귀를 뚫고 50대에 다시 둘러보려니 낯설다.
가져온 귀걸이로 검사하면 비용이 달라지고, 매장 내 제품으로 검사하면 45,000원을 달란다.
비싸다 싶어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얌전한 직원이 있는 다른 매장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한 쌍 15,000원짜리 큐빅 귀걸이를 구입하고 막힌 왼쪽 귀를 뚫었다.
정확히는 막힌 게 아니었다.
길은 있었지만, 귀걸이가 제대로 들어가 출구를 찾지 못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했다.
분명 귀걸이가 구멍으로 들어가는데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귀를 잡아당기고 움직여도 도통 길은 열리지 않았다.
포기하고 또 포기하기를 여러 번, 귀는 뻘겋게 달아올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얌전한 점원의 손길이 막혀 있던 길을 열어주었다.
오랫동안 방치해 둔 내 귀는 성이 나 있었고, 진입로는 열려 있었으나 출구는 막혀 있었다.
혼자 아무리 휘저어도 절대 열리지 않았던 그 길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열린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삶도 그 귀와 같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현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만 쌓여가는 나날.
하지만 막힌 출구는 뚫어야만 열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혼자서는 열 수 없을 때도 있다.
희망 없는 삶 같아도 출구는 반드시 있다.
뚫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걸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나는 막힌 출구 앞에 서 있지만, 다시 걸어야 한다.
그리고 걸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