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꺼내본 이야기
어제는 아이 학교 엄마와 정말 오랜만에 저녁 외출을 했다.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저녁 나들이.
집에 돌아온 남편이 또 무슨 꼬투리를 잡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숨 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소모되었던 학교 엄마와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었기에,
결국 외출을 감행했다.
지친 하루를 살아내는 법
늘 약속 시간보다 늦던 그녀가, 이날은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전엔 병원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땀에 절은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은 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무역 수업을 듣는 그녀.
갱년기 탓인지, 밤이면 3~4번은 깨고,
피곤이 몰려오면 졸린 눈을 비비며 끊었던 커피를 다시 들이켜 수업에 집중한다.
그렇게 저녁이 되면 또 후다닥 집으로 가서 저녁을 차리고, 아이를 맞이한다.
빨래, 설거지, 아이 학습을 챙기고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덧 밤 10시.
하루가 끝났나 싶으면, 다시 내일이 시작된다.
씻고 내일을 준비하다 잠들고, 밤새 뒤척이며 더위에, 걱정에 깨기를 반복한다.
순리대로 흘러가리라
그녀가 말했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갈 거야. 걱정해서 해결될 일이면 얼마나 좋겠니.
그냥 하늘에 맡기고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수밖에 없어.”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지칠 때마다 기도로 응답을 구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감사함을 밑바탕으로 하루를 살아내자.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녀 앞에서 나는 홀로 술잔을 비웠다.
건강을 위해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친구 앞에서
조심스레, 그러나 분주히 마셨다.
처음 꺼낸 나의 이야기
그리고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꺼냈다.
1년 전 시작된 이혼소송,
그로 인한 현실,
그리고 아이의 불안정한 심리까지.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우리는 같은 나이,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
서로의 삶을 조금씩 토로하며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엄마니까, 결국 우리는 살아내야 하니까.'
허함을 달래는 밤
늦은 밤, 자리를 옮겨 카페에 앉아 멜론빵을 앞에 두었다.
고기로 채워진 배를 어루만지며 결국 달콤한 빵을 또 밀어 넣는다.
결핍이 식욕으로 승화된다. 배는 부르지만, 허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폭음, 과식…
그런 것들로 흔들릴 뻔하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게 지금의 나에겐 하루를 버티는 유일한 힘이니까.
감추고 싶은,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말처럼, 혼자 메아리치던 이혼소송의 아픔을 처음으로 꺼냈지만
부끄러움과 허전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일까. 왜 여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마.”
나야 괜찮은데.
그게 마치 내 치부라도 되는 듯 감춰야만 한다고 한다.
나는 괜찮은데...
끊어야 할 업보
더는 붙잡고 싶은 것도 없다.
지키고 싶은 것도 없다.
몸부림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이혼은, 그저 내 삶의 여정 중 잠시 들렀다 가는 골목 같은 것일 뿐.
‘군자는 대로행이다’
이제는 큰길로 나아가야 한다.
숨고 피하고 도망치면,
결국 피해자는 내 아이가 된다.
불교에서는 ‘까르마’라 했다.
내가 짊어진 업보를 내 선에서 끊지 못하면
그건 결국 아이에게로 이어진다.
아이를 위해 참고 버틴다는 그 선택이
아이의 삶을 짓누르는 결과가 되어선 안 된다.
내가 꿈꾸는 행복
밤 12시 가까운 시간, 혼자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엔 남편과 아이가 매트리스에 누워 있다.
아이는 곤히 잠들었고,
그 옆의 인간은 휴대폰을 만지며 거실등을 환히 켜놓고 내게 시위를 한다.
미련한 인간. 잠든 아이를 위해 불 하나 끌 줄 모르는 사람.
고장 난 아이 폰 유심까지 바꿔가며 귀가를 재촉하고,
밤 12시까지 아이를 깨워두는 사람.
그에게는 이제 한 치의 미련도 없다.
신경 끄자, 다짐하면서도 한숨이 자꾸 새어 나온다.
정신과에서 만난 의사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약으로 조정할 수 있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나도 안다.
“후우...”
숨을 쉴 뿐인데 왜 이토록 가슴이 저릴까.
끝나지 않는 고통. 답이 없는 인생.
로또라도 당첨되면 삶이 좀 윤택해질까? 행복할까?
하지만, 행복은 그런 게 아니다.
아이의 온기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
아이 담임도 아닌 선생님이 손을 다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다가와 조심스레 “호~”하고 불어주었다고.
그걸 선생님이 감동해 다른 교사들에게 전했다고.
이게 내가 꿈꾸는 행복이다.
아이가 기쁘고 슬픈 감정을 알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가만히 다가가 위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
아무리 윤택한 삶이라도
그 정서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오늘도, 아이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나는 다시 내 삶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