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온 남편, 흔들리는 일상
법원에서 가정조사관의 전화가 왔다.
이 조사관은 예전에 내가 피해자 보호명령 연장 신청을 했을 때도 연락을 준 적이 있다.
그때도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고, 나는 의미 없는 길거리에서 통화를 위해 중간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다.
사실, 그동안의 문제점에 대해 적나라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혼을 반대하는 남편을 자극할까 조심스러웠다.
사진으로 남긴 증거들
처음 소송을 시작할 때, 변호는 말했다.
'한 번 집을 나간 남편은 이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 말을 믿고, 나는 상황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전달했었다.
그래도 사진 증거는 제출했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아이와 함께 집 앞 현관까지 올라온 남편, 아이가 비밀번호를 누르게 한 장면, 감정대로 행동하며
면접교섭권을 일방적으로 끊은 사실.
무엇보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와 단둘이 생활하며 겨우 적응해 가던 절박함을 전했다.
조사관의 질문
그런데 조사의 말은 뜻밖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피해자 보호명령 연장을 신청하는 거죠?”
이게 무슨 질문인가.
남편은 폭행치상으로 신고되고, 처벌까지 받았다.
그 후 임시조치로 집 밖으로 나갔고, 피해자 보호명령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접근금지를 어겼다.
위협적인 행동으로 구류까지 살았다.
나는 연장을 위해 이후 상황을 담은 사진까지 제출했다.
그런데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상황에서조차 내가 왜 연장을 신청하는지 묻다니…
내가 설명을 못한 걸까, 아니면 조사관이 업무를 숙지하지 못한 걸까.
다시 흔들리는 아이
남편이 돌아오자 아이의 일상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부부가 같은 집에 살지만, 밥도 따로, 잠도 따로. 말도 없는 모습. 아이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같이 놀자”며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고, 문제 행동을 보였다.
아랫집에는 피해가 이어졌다.
달래도 바로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을 피해 근처 카페로 향하곤 했다.
아이에게 설명했다.
“어른들도 싸우면 말을 안 할 수 있어. 너도 울 때 ‘울지 마’ 한다고 바로 그치진 않잖아. 우리도 시간이 필요한 거야.”
이해했는지 그 후 아이는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멈췄다.
사라진 부성애, 남은 건 불쾌한 기운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남편에게서 느껴졌던 부성애는 점점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쾌한 기운만 남았다.
하루 종일 거실에서 생활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건 숨이 막혔다.
변호사를 선임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재판 한 번 열리지 않은 현실.
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판사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 걸까.
덮을 수 없는 무게
이제 곧 방학이다.
더운 날씨, 짜증이 늘고 예민해진 아이가 버텨야 할 하루하루가 걱정이다.
아랫집의 민원은 또 얼마나 쏟아질까.
출근해야 하는 나는 얼마나 괴로울까.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사람을 무너뜨린다.
두 어깨에 짓눌린 이 무게, 제발 한쪽이라도 덜어내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다.
끝없는 질림
냉장고에서 꺼낸 상한 음식을 그대로 싱크대에 던져놓는 남편.
버릴 거라면 버리든가, 그냥 둘 거면 왜 꺼내는 건가.
항상 저런 식이다.
눈을 질끈 감아보지만, 반복되는 행동이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혼자 음식을 챙겨 먹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너무 모질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아직 멀었다고 느낀다.
정신 차려라.
그 애틋함이 연민이 아니라는 걸 안다면,
이제 쓸데없는 오지랖은 그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