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46화. 몸과 마음은 분리되는가?

소제목- 어쩌라고...

by 나은

희미하게 눈을 뜨니 익숙한 방 안 풍경이 들어왔다.

내 방, 내 침대, 그대로의 천장과 흐트러진 바닥.

숙취해소제를 미리 삼킨 덕에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불쾌하고 끈적한 감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랫배를 내려다본 순간, 남편이었던 사람이 웅크린 채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괴성이 터져 나왔다.

몸을 뒤척이자 그는 놀란 듯 나를 더 옥죄었다.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나는 결사적으로 저항하며 소리쳤다.

“꺼져, 당장 나가!”


숨이 가빠지고 온몸이 떨렸다.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선풍기 날개가 삐걱이며 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어둠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늪에 빠지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또 다른 장면.

발이 진흙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중학교 시절, 등굣길이 떠올랐다.


밤새 내린 비로 역 광장 옆 지름길은 뻘로 변해 있었다.

연탄 공장이 있던 그곳, 철로의 잔해가 이어진 길.

수없이 다니던 길인데, 그날따라 낯설었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진흙이 발등을 덮더니 곧 발목까지 차올랐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른 아침, 사람은 없었다.


중간 지점까지 와버린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돌아갈 수도 없는 임전무퇴의 상황에 갇혔다.

하늘은 쨍하니 맑았지만, 나는 뻘에 붙잡힌 채 혼자였다.


‘정신 차리자. 여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발을 뺄 때는 강하게, 다른 발을 옮길 때는 최대한 빠르고 가볍게.

머리로, 입으로 되뇌며 차근차근 발을 떼자, 거짓말처럼 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철로 위를 걸으며 생각했다.

'아, 죽다 살아난 기분이 이런 걸까?'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운동장 수돗가에서 진흙으로 뒤덮인 신발과 바지를 씻어냈다.

지나가던 여선생님이 물었다.

“너 어디 시골에서 왔니? 집이 변두리니?”

나는 긴 설명이 귀찮아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신발은 질퍽거렸고, 그 기분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다시 그 기분


그리고 지금, 내 몸에 다시 그 기분이 스며들었다.

상기된 불쾌한 기운이 나를 잠식한다.


싫다, 싫다, 자꾸 되뇔수록 더 싫어지는 감각.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떠 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있는 걸까?

아니, 분리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견디고 있는 걸까?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떨어질 만큼 다 떨어진 건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중얼거린다.

'어쩌라고…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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