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62화. 치밀어 오르는 분노, 결국 가출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by 나은

매 순간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국립 어린이집으로 옮기기 전, 아이는 사설 어린이집에 다녔다.

하지만 거기서도 아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우르르 몰려다니긴 했지만, 대화도, 놀이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친절하게 대하고,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것.

그것이 아이를 지키는 엄마의 방법이었다.





교회와 쇼핑몰, 그리고 77일 기도


다니던 어린이집은 원장 부부가 건물주였다.

5층에는 원장 남편이 목사로 있었고, 교사들 대부분이 교인 또는 친인척이었다.

결국 나도 못 이기는 척 전도되어, 일요일이면 아이와 교회에 나갔다.


예배가 끝나면 다 함께 밥을 먹었다.

나를 전도한 교사는 목사님의 제수씨였는데, 선하고 진심으로 우리 모자를 챙겨주었다.

알면서도 속고, 몰라서도 속았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교회는 사업 확장을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회원 수에 따라 단가가 달라졌다.

그래서 교인들은 거리로 나가 회원 가입을 받는 경쟁을 했다.

십일조 순위와 회원 가입 실적을 전광판에 띄우며 성과를 내세웠다.


나는 보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더 편히 다니길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게다가 홈페이지에 적힌 후원금 안내(유니세프, 월드비전 등)는 나를 더 열심히 움직이게 했다.





어린이집 재롱잔치에서의 또 다른 상처


재롱잔치 날, 옆의 여자아이는 무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아이는 풍선에 정신이 팔려 간간이 율동을 흉내 낼 뿐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후, 그 여자아이 엄마가 내뱉은 말이 나를 베었다.


“민아, 왜 율동 안 했어? 어휴, 옆에 준이 챙기느라 못했지? 착하긴...”


억울했다.

우리 아이는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도, 다른 아이가 돌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생채기를 입었다.





77일 새벽기도와 운동


가을 무렵, 목사님은 77일 기도를 선포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운동장에 나가 전력질주를 했다.

남자들은 농구, 여자들은 피구와 빠른 걷기를 했다.


농구공의 촉감, 슛이 들어가는 쾌감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때의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했고, 분주한 내 삶 속에서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별문제 없다”는 목사님의 말이 나를 교회에 붙들어 매었다.


그러나 곧 보았다.

험담과 경쟁, 권력 싸움.


하나님은 없었다.

농구에서 두각을 드러낸 나를 곱지 않게 본 원장 부부의 눈빛이 결국, 이듬해 아이를 국립 어린이집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교회의 몰락, 나의 선택


이후 소식은 TV 시사 프로그램으로 들려왔다.

라스베이거스 도박, 신도들의 투자금 증발, 수련회 때의 이상한 일들…

결국 교회는 갈라졌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엄마의 노력이 아이의 환경을 바꾼다.

77일 새벽기도는 후회로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을 옮긴 판단은 내 인생의 신의 한 수였다.





남편과의 충돌, 그리고 도망



국립 어린이집은 엄마들 간의 교류가 더 컸다.

친절히 다가오는 엄마들이 있었지만, 나는 주눅이 들었다.

아니, 주눅 들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내 노력이 나를 잠식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순간이 수차례.

남편은 여전히 무관심했고, 수영장 동행마저 거절했다.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다.

그러나 내 울분은 언제나 그랬듯 남편의 거친 언행에 막혔고, 결국 폭행으로 이어졌다.


쫓겨났다.

새벽까지 하는 버거킹에서 시간을 보내고, 첫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해운대는 나를 반기지 않았다.

청사포 근처에서 알탕과 소주를 마셨다.

억울함이 씻기는 듯했지만, 가슴은 더 무거워졌다.


달맞이길 찜질방에 들어서며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창밖 등대 불빛만이 나를 말렸다.


끝나지 않는 굴레


결혼 한 달 만의 교통사고도 내 탓이라던 남편.

불임을 “ㅂㅅ”이라 부르던 사람.

아이의 결핍조차 무관심으로 덮어버린 사람.


그의 언어와 폭력은 나를 죽음의 끝자락으로 몰아갔다.

나는 웅크린 새우처럼 잔뜩 몸을 말고,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찜질방의 밤을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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