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이 끝나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이었다.
같은 반 엄마들이 그룹 수영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발달이 늦은 아이가 또래와 어울릴 기회라 생각해, 남편을 설득해 참여했다.
그때 알았다.
우리 아이가 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낯선 시선과 첫 경험
나를 제외한 엄마들은 이미 1년 넘게 친분을 쌓아 서로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사이였다.
평소 오픈 마인드인 나는 자연스레 그 무리에 섞였다.
하지만 수영 첫날, 모두가 경악했다.
6세 아이 7~8명을 남자 강사 혼자 맡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물장구치며 즐거워했지만, 내 아이는 수영장 배수구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고개를 숙여 물을 바라본 것뿐인데, 다른 엄마들 눈엔 고인 물을 마시는 듯 보였나 보다.
동행한 한 할머니는 크게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도대체 누구 아이냐? 엄마가 관리를 왜 안 하냐? 어머어머, 쟤 왜 저래?”
나는 멍해졌다.
당황스러움과 당혹감이 몰려왔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나 역시 놀랐다.
부모 역할의 균열
집에서 욕조 목욕을 즐기던 아이에게는 넓은 수영장이 새로운 자극이었다.
나는 아이의 호기심을 존중하며 경험을 더 늘려주자고 다짐했다.
마침 수영장이 집에서 5분 거리였고, 자유수영 이벤트도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제안했다.
“샤워실, 탈의실은 아빠가 함께 해줘. 놀아주는 건 내가 다 할게.”
그러나 남편의 첫 반응은 늘 같았다.
“아, 네가 데리고 다녀. 내가 왜?”
무관심. 거절. 짜증.
아이의 늦은 발달에 대해서도, 병원 진료 결과도, 남편은 언제나 귀를 막았다.
함께해야 하는 길
수영 외에도 미술 활동을 병행했다.
하지만 아이는 차례를 지키지 않고, 딴짓을 하고, 선생님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던 나였기에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두 수업을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다른 엄마들은 오히려 환영했다.
그래도 몇몇은 나를 이해하며 친분을 이어갔다.
키즈카페에 가도 다른 엄마들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지만, 나는 혼자 겉도는 아이와 몸으로 놀아야 했다.
불임의 또 다른 굴레
나 역시 처음이었다.
그리고 남편도, 물론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 삶은 더 깊은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불임으로 10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아이를 얻었다.
그 순간, 내 인생의 정막이 거둬지고 환희가 올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굴레였다.
“임신도 못하는 ㅂㅅ 주제에.”
그렇게 불렸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니
“ㅂㅅ이 ㅂㅅ을 낳았네.”
라는 말로 바뀌었다.
나는 다시 묻는다.
이대로 영원한 루저가 되어야 하는가.
답이 없다.
하아... 답이 없다.